춤과 음악의 나라, 러시아
2022년 3월, 세계 발레계에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볼쇼이 발레단의 수석 무용수 올가 스미르노바가 10년 넘게 몸담았던 발레단을 떠나 네덜란드로 향한다는 것이었다. “조국이 수치스러워질 날이 올 줄은 몰랐다.” 그녀가 소셜미디어에 남긴 이 한 마디는 러시아 발레 역사에 깊은 균열을 상징하는 문장이 되었다. 30세의 스미르노바는 단순한 무용수가 아니었다. 2013년 ‘발레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에서 최고 여성 무용수상을 받았고, 《백조의 호수》와 《지젤》의 주역을 맡으며 볼쇼이의 얼굴이 되었던 최정상급 발레리나였다. 러시아 무용평론가 레일라 구흐마조바는 그녀의 결정을 “러시아 발레계에 폭탄을 투하한 것과 같다”고 표현했다. 표현의 자유를 위해 조국을 떠난 러시아인 수석 무용수였기 때문이다. 이전에도 더 나은 조건을 찾아 이적하는 무용수들은 있었지만, 이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사건이었다.
300년 전통, 바가노바의 유산
스미르노바의 이탈이 이토록 충격적이었던 이유는 러시아 발레가 지닌 역사적 무게 때문이다. 1738년, 러시아 황실의 후원 아래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첫 발레학교가 문을 열었을 때부터 러시아는 발레 제국의 기초를 다지기 시작했다. 19세기 말 파리에서 낭만 발레가 쇠퇴하자, 발레의 중심지는 자연스럽게 러시아로 이동했다.
20세기 초, 이 전통은 한 여성에 의해 체계화되었다. 아그리피나 바가노바이다. 뛰어난 무용수였지만 자신의 기술이 불충분하다고 느낀 그녀는 1916년 무대를 떠나 교육자의 길을 택했다. 당시 러시아는 프랑스파와 이탈리아파의 용어와 기법을 무분별하게 혼용하고 있었다. 바가노바는 프랑스 발레의 우아함과 이탈리아 발레의 기교를 융합하여 독자적인 교습법을 개발했다. 1934년 출간된 그녀의 저서 『클래식 발레의 기초』는 발레사에서 가장 중요한 교육서가 되었다.
바가노바 무용 교습의 특징은 명확했다. 상체와 하체의 조화로운 사용, 부드러운 암포르망(팔 동작), 강력한 점프력과 회전력, 관절의 가동 범위를 극대화하는 러시아 발레 특유의 스타일은 전 세계 발레 교육의 표준이 되었다. 바가노바 아카데미 졸업생의 95%가 마린스키 발레단에 입단하는 시스템은 세계 최고 수준의 무용수를 배출하는 공장이었다.
차이콥스키의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 《잠자는 숲속의 미녀》는 러시아에서 탄생해 전 세계 발레단의 필수 레퍼토리가 되었다. 니진스키, 파블로바 같은 전설적 무용수들이 러시아에서 나왔다. 세르게이 디아길레프의 '발레 뤼스'(1909~1929)는 러시아 발레를 유럽 전역에 전파하며 20세기 발레 예술의 혁명을 이끌었다. 모스크바의 볼쇼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마린스키는 여전히 세계 5대 발레단으로 평가받는다.
전쟁이 남긴 균열
그러나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이 모든 것을 뒤흔들었다. 스미르노바는 텔레그램에 이렇게 썼다. “나는 정직하게 내 영혼의 모든 것으로 전쟁에 반대한다고 말해야 한다. 나의 할아버지가 우크라이나인이며, 난 1/4이 우크라이나인이다.” 그녀가 느낀 것은 단순한 정치적 입장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죽어가고, 집을 잃고, 집을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이 가슴 아프다. 몇 주 전만 해도 이런 일이 생길 것이라고 누가 상상했겠는가?”
스미르노바만이 아니었다. 브라질 출신 다비드 모타 소아레스, 이탈리아 출신 자코포 티시 같은 볼쇼이의 무용수들이 발레단을 떠났다. 마린스키 발레단의 빅터 카익세타도 네덜란드로 향했다. 대부분 외국인 무용수였지만, 러시아인인 스미르노바의 이탈은 차원이 달랐다. 그것은 러시아 발레의 심장부에서 터진 양심의 목소리였다.
문화예술계 전반이 흔들렸다. 2022년 4월, 국제음악콩쿠르세계연맹은 세계 3대 콩쿠르 중 하나인 차이콥스키 콩쿠르의 회원 자격을 박탈했다. 긴급 총회에서 90%의 회원들이 찬성표를 던졌다. “러시아의 야만적인 전쟁과 우크라이나에서의 잔혹한 인명 피해 앞에서, 러시아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는 콩쿠르를 더는 회원으로 유지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흔들리는 제국
전쟁은 외부의 압력만 가져온 게 아니었다. 내부에서도 균열이 시작되었다. 마린스키 발레단은 최근 몇 년간 심각한 인재 유출 문제를 겪고 있다. 바가노바 아카데미에서 갓 졸업한 유망주들이 마린스키에 입단하지 못하고 이웃 미하일로프스키 발레단이나 라이벌 볼쇼이로 유출되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올가 스미르노바가 대표적이다. 그녀는 마린스키에서 군무로 시작했지만 입단하지 못했고, 볼쇼이로 옮겨 순식간에 수석 무용수가 되었다. 크세니아 지간쉬나, 알료나 코발료바, 빅토르 레베데프 등 마린스키를 떠나 다른 발레단에서 스타가 된 이들의 명단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특히 레베데프의 미하일로프스키 이적은 수석 발레리노가 부족한 마린스키에 큰 손실이었다. 순혈주의를 고수하던 마린스키의 전통은 이제 개방성과의 긴장 속에 놓여 있다. 국제 교류가 제한되고, 해외 순회공연이 어려워지면서 러시아 발레는 점차 고립되고 있다. 경제 제재로 인한 재정 압박도 현실이다. 그럼에도 국가 운영 시스템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지만, 예전의 영광을 유지하기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예술은 국경을 넘는가
아이러니하게도, 이 위기의 순간에 러시아 발레의 진정한 힘이 드러났다. 바가노바 무용교습법으로 훈련받은 무용수들은 어디를 가든 환영받았다. 올가 스미르노바는 네덜란드 국립발레단에서 즉시 주역으로 무대에 섰다. 이탈리아 출신 자코포 티시는 “어떤 전쟁도 정당화할 수 없다”며 볼쇼이를 떠났지만, 그가 배운 러시아 발레의 기술은 어디서나 통용되었다.
러시아 발레가 세계에 뿌린 씨앗들은 이제 러시아 국경을 넘어 꽃피우고 있다. 바가노바 무용교습법은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서 표준 교육법으로 자리 잡았다. 《백조의 호수》를 추지 않는 발레단은 없고,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전 세계에서 《호두까기 인형》이 무대에 오른다. 정치가 예술을 가두려 해도, 예술은 이미 국경을 넘어 인류 공동의 유산이 되었다.
올가 스미르노바가 네덜란드 무대에서 백조로 변신할 때, 그녀의 몸에는 여전히 러시아 발레의 DNA가 흐른다. 전쟁은 사람을 갈라놓지만, 예술은 여전히 우리를 연결한다. 러시아 발레는 지금 가장 큰 시련을 겪고 있지만, 300년 전통의 힘은 국경과 정치를 넘어 살아 숨 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