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터에서 결혼식까지
사랑받는 민요

춤과 음악의 나라, 러시아

by 이헌철
image.png 러시아 여성 경찰 [출처:중앙일보]

1938년 모스크바에서 소련 국립 재즈 오케스트라의 첫 공연 리허설장이었다. 한 여성이 무대 뒤에서 숨죽이며 리허설을 지켜보고 있었다. 작곡가 마트베이 블란테르가 새로 쓴 곡이 흘러나오자,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날 수조차 없었다. 그녀는 가수 리디야 루슬라노바였다. 며칠 후, 그녀는 자신의 무대에서 그 곡을 불렀다. 악보도 없이, 허락도 없이. “어떻게 악보도 없이 곡을 불렀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난 듣자마자 너무 황홀해서 그 곡을 그냥 외워버렸습니다.”

공식 초연 무대에서 이 노래는 세 번의 앙코르를 받았다. 그리고 3년 후 독일군이 소련을 침공했을 때, 이 노래는 전쟁터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노래의 제목은 '카츄샤'였다.

민요가 아닌 민요

엄밀히 말하면 카츄샤는 민요가 아니다. 작곡가도, 작사자도 분명하다. 하지만 독소전쟁을 거치며 러시아 내에서만 300가지 버전이 만들어졌고, 이 노래는 한국의 아리랑처럼 러시아의 국민가요가 되었다. 원래 재즈 오케스트라를 위해 쓰인 곡이 정식 군가로 승격되고, 민요로 사랑받게 된 것이다. 가사는 단순하다. 전쟁터에 나간 연인이 무사하기를 기원하는 처녀 카츄샤의 이야기이다. 배꽃과 사과꽃이 피는 봄날, 강둑에 서서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젊은 여인을 그린다. 그러나 이 단순한 노래가 1941년부터 1945년까지 얼마나 많은 병사들의 가슴을 울렸을까. 살아서 돌아가면 만날 사람이 있다는 것, 자신을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전쟁터에서 그보다 강력한 위안은 없었을 것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 노래가 무기의 이름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소련의 다연장 로켓포 BM-13은 '카츄샤 로켓'으로 불렸다. 독일군은 연속으로 발사되는 로켓의 굉음을 듣고 이를 '스탈린의 오르간'이라 불렀다. 노래 '카츄샤'는 병사들에게 희망을 주었고, 무기 '카츄샤'는 적에게 공포를 주었다. 같은 이름이 사랑과 전쟁, 두 얼굴을 모두 가진 것이다.

국경을 넘은 노래

카츄샤는 러시아를 넘어 세계로 퍼져나갔다. 이스라엘에서는 히브리어로 번안(飜案)되어 민요의 지위까지 얻었다. 벨라루스 출신 유대인 노아 프니엘이 1940년 리투아니아에서 히브리어로 번역했고, 그가 신생 이스라엘로 이주하면서 유대인 청년운동가들 사이에 대유행했다.

이탈리아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말기, 파르티잔(Partisan:정규군이 아닌 민간인으로 구성된 유격대)들이 이 노래에 완전히 새로운 가사를 붙였다. 1943년 레지스탕스 의사였던 펠리체 카시오네가 카츄샤의 멜로디에 투쟁의 가사를 입힌 'Fischia il vento'(휘몰아치는 바람)가 탄생했다.

원곡 카츄샤가 "배꽃과 사과꽃이 피었네, 강둑에 카츄샤가 나왔네"라고 노래했다면, 이탈리아 버전은 “바람이 휘몰아치고 폭풍이 광란하네, 신발은 떨어졌지만 우리는 가야만 한다, 붉은 봄을 쟁취하러”라고 외쳤다.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처녀의 노래는, 파시스트에 맞서 싸우는 전사의 노래가 되었다. 같은 멜로디가 어떤 곳에서는 사랑을, 어떤 곳에서는 해방을 노래한 것이다.

현재도 카츄샤는 러시아 전승기념일인 5월 9일마다 붉은 광장에서 울려 퍼진다. 퍼레이드의 행진곡으로, 노병들의 합창으로, 젊은 세대의 노래로. 8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 노래는 살아남았다.

결혼식의 환희, 칼린카

카츄샤가 전쟁의 비극과 함께했다면, 칼린카는 러시아인들의 기쁨과 함께했다. 1860년 민속학자이자 작곡가인 이반 라리오노프가 작곡한 이 노래는 딸기가 열리는 5월의 전원을 노래한다. “칼린카, 칼린카, 나의 칼린카! 정원에 들딸기, 산딸기가 자라고 있네.” 경쾌하고 밝은 이 노래는 소련 시절 결혼식에서 빠지지 않았다. 메기고 받는 구조로 되어 있어 여러 사람이 함께 부르기 좋았고, 점점 빨라지는 리듬은 축제의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렸다. 전쟁의 상흔 속에서도, 식량난 속에서도, 러시아인들은 결혼식에서 칼린카를 불렀다. 내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오늘만큼은 기뻐하자고 노래했다..

1988년, 이 노래는 뜻밖의 방식으로 전 세계에 알려졌다. 아타리 테트리스의 배경음악으로 선정된 것이다. 러시아에서 개발된 게임에 러시아 민요를 넣는다는 발상은 단순했지만 효과적이었다. 전 세계 수백만 명이 블록을 맞추며 칼린카를 들었다. 노래의 내용은 몰라도, 그 경쾌한 리듬만큼은 게임의 중독성과 완벽하게 어울렸다.

단조의 슬픔, 장조의 환희

러시아 민요는 유럽의 다른 민요들과 확연히 다르다. 장조보다 단조로 된 곡이 압도적으로 많다. 러시아의 역사가 유럽권뿐만 아니라 동양권과도 얽혀 있기 때문이다. 몽골의 지배, 타타르의 침략, 끝없는 전쟁이 이어졌다. 광활한 대지 위에서 러시아인들은 생존을 위해 싸워야 했고, 그들의 노래에는 그 슬픔과 고난이 배어 있다.

그러나 동시에 러시아 민요는 놀라운 환희를 담고 있다. 칼린카처럼 격렬하게 기쁜 노래들이 있다. 이 이중성이야말로 러시아 민요의 본질이다. 겨울은 혹독하지만 봄은 찬란하고, 전쟁은 참혹하지만 평화는 달콤하다. 러시아 민요는 이 극단 사이를 오간다. 발랄라이카(우크라이나 민속악기)의 경쾌한 선율, 아코디언의 애절한 울림, 그리고 합창의 강렬한 울부짖음. 러시아 민요는 악기 하나만으로도 완성되지만, 여럿이 모여 부를 때 진가를 발휘한다. 카츄샤도, 칼린카도 모두 합창을 전제로 한다. 함께 부르며 슬픔을 나누고, 함께 부르며 기쁨을 배가시킨다.

민요의 힘

카츄샤와 칼린카, 두 노래는 서로 다른 길을 걸었지만 같은 운명을 맞았다. 시대와 국경을 넘어 사랑받는다는 것, 작곡가가 있든 없든, 러시아에서 태어났든 이스라엘에서 번안되었든,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그 노래를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우리가 클래식 음악회에서 듣는 차이코프스키도, 무소르그스키도, 라흐마니노프도 모두 이런 민요에서 영감을 받았다. 차이코프스키는 자신의 교향곡에 민요 선율을 직접 인용했고, 무소르그스키는 러시아 민중의 말투와 리듬을 오페라로 옮겼다. 러시아 클래식 음악의 뿌리는 바로 이 민요들이다.

전쟁터에서, 결혼식에서, 게임기에서, 카츄샤와 칼린카는 여전히 불린다. 누군가는 눈물을 흘리며, 누군가는 웃으며, 누군가는 그저 흥얼거리며 부른다. 그것이 민요의 힘이다. 멜로디 하나가 시대를 건너뛰고, 국경을 무시하고, 사람의 마음에 닿는 것이다. 19세기 러시아에서 태어난 노래들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무언가를 말해주는 것 같다. 한번 들어보라. 카츄샤의 애절함과 칼린카의 환희를 유튜버에서 들어보라. 그리고 왜 사람들이 백 년이 넘도록 이 노래들을 부르는지 느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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