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년 파리,
러시아가 세계를 사로잡은 밤

춤과 음악의 나라, 러시아

by 이헌철
image.png 1909년 파리에서 공연한 바츨라프 니진스키. 출처 - 국민일보[원본링크] - https://www.kmib.co.kr/art

1909년 5월 19일 밤, 파리 샤틀레 극장의 무대 위로 한 남자가 뛰어올랐다. 관객들은 숨을 멈췄다. 그는 공중에서 멈춘 듯했다. “저 남자는 날개가 있는가?” 누군가 속삭였다. 그는 바슬라프 니진스키였다. 스무 살의 러시아 무용수가 그날 밤 파리를 정복했다. 그러나 이것은 한 천재의 승리만이 아니었다. 러시아 예술이 유럽의 심장부를 뒤흔든 순간이었다. 그 폭발의 중심에는 세 남자가 있었다. 재능 없다는 선고를 받은 기획자, 러시아 민요로 도박을 건 젊은 작곡가, 그리고 중력을 거부한 무용수였다. 이들의 이야기는 100년이 지난 지금, 한국의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한글 가사로 빌보드를 석권하고, 한국어로 오스카를 받는 이 시대. 우리는 같은 질문을 던진다. 특수한 것이 어떻게 보편이 될 수 있는가? 그 답은 1909년 파리에 있었다.

image.png 바슬라프 니진스키 Ⓒ.wikipedia

재능 없는 작곡가의 복수

세르게이 디아길레프는 작곡가가 되고 싶었다. 러시아 귀족 가문 출신으로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둘러싸여 자랐다. 그러나 1894년, 스승은 냉정하게 선언했다. “자네는 재능이 없네.” 22세 청년에게 치명타였다. 그러나 디아길레프는 다른 길을 찾았다. 창조자가 될 수 없다면, 창조를 가능하게 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자신에게 천재를 알아보는 눈과 불가능을 현실로 만드는 집념이 있음을 발견했다. 1906년 파리로 건너간 그는 러시아 미술 전시회와 음악회로 성공을 거뒀다. 파리는 이 러시아인이 가져오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환호했다. 그리고 1909년, 그는 자신의 이상을 실현할 무대를 찾았다. 발레였다. 당시 발레는 파리에서 죽어가는 예술이었다. 여성 무용수들의 우아한 동작을 감상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없었다. 디아길레프는 완전히 다른 발레를 상상했다. 음악, 무용, 회화가 하나로 융합된 ‘종합예술’로서의 발레였다. 그의 철학은 명확했다. “가능한 것에는 관심이 없다. 불가능한 것을 실현하는 것이 흥미롭다.”


불새의 도박

1909년 가을, 디아길레프는 위기에 봉착했다. 1910년 시즌을 위한 작곡가들이 줄줄이 거절했다. 시간이 촉박했다. 그때 그는 1년 전 들었던 젊은 작곡가를 떠올렸다. 27세의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라는 무명의 작곡가였다. 그러나 디아길레프는 그가 곧 유명해질 사람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스트라빈스키는 망설였다. 작곡으로 서구 음악계에서 인정받고 싶었던 젊은 작곡가에게 러시아 민담은 촌스럽게 보였다. 파리의 세련된 관객들이 과연 이해해 줄까? 하지만 그는 도박을 걸었다. 러시아를 숨기는 대신, 가장 러시아적인 것을 전면에 내세우기로 했다. 러시아 농민들이 부르던 민요를 그대로 사용했다. 소박하고 단순하면서도 러시아 대지의 향기가 가득한 그 선율들과 동시에 서구 음악이 들어본 적 없는 이국적인 화음을 더했다. 현악기는 불타는 듯 떨렸고, 관악기는 황금빛 깃털처럼 반짝였다.

1910년 6월 25일, 파리에서 《불새》는 막이 올랐다. 무대는 러시아 민속 예술의 찬란함으로 빛났다. 오케스트라에서 흘러나온 것은 파리가 들어본 적 없는 소리였다. 이국적이면서도 보편적이고, 원시적이면서도 세련된 음악이었다.

image.png 스트라빈스키와 니진스키 Ⓒhttp://ko.goclassic.co.kr/

격렬한 리듬이 몰아치고 괴물들이 미친듯이 춤추었다. 마지막 러시아 민요가 승리의 찬가처럼 울려 퍼졌을 때, 극장은 폭발했다. 스트라빈스키는 하룻밤 사이에 유럽 음악계의 총아가 되었다. 가장 러시아적인 것으로 승부를 건 그 선택이 옳았다는 것이 증명된 순간이었다.


1913년 5월 29일, 폭동

성공은 더 큰 야망을 낳았다. 세 사람은 더 과감한 것을 원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봄의 제전》이었다. 선사시대 러시아에서 봄을 맞이하기 위해 처녀를 제물로 바치는 이교 의식에 끔찍하면서도 원초적인 이야기를 담았다. 스트라빈스키는 음악의 모든 규칙을 깨뜨렸다. 불협화음, 불규칙한 리듬, 무용수들은 우아하게 날아오르지 않았다. 땅을 쿵쿵 구르고, 온몸을 떨고, 원시인처럼 뛰어다녔다. 1913년 5월 29일, 파리 샹젤리제 극장에서 연주가 시작되자 청중석에서 수군거림이 들렸다. 78세의 원로 작곡가 생상스조차 놀라 옆 사람에게 물었다. “저게 무슨 악기지요?” “바순입니다.” 생상스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저렇게 높은 음을 바순으로 낸다니, 말도 안 돼!”

image.png 디아겔레프 Ⓒwikipedia

격렬한 리듬이 폭발하자 관객석이 난장판이 되었다. "이게 무슨 춤이냐!" 고함이 터져 나왔다. 누군가는 야유를 보냈고, 누군가는 환호했다. 물건이 날아왔다. 경찰이 극장으로 들어왔다. 무대 옆에 선 니진스키는 목이 터져라 외쳤다. “하나, 둘, 셋!” 공연이 끝난 후, 디아길레프의 말은 단 한마디였다. “정확히 내가 원했던 것이야.”

세상은 《봄의 제전》을 ‘봄의 학살’이라고 깎아내렸다. 그러나 그것은 새로운 음악이 태어나기 위한 진통이었다. 이듬해 연주회에서 이 곡은 열광적인 환호를 받았다. 오늘날 《봄의 제전》은 음악사를 바꾼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100년 후, 우리의 이야기

1929년 디아길레프가 죽자 발레단 <발레 뤼스>는 해체되었다. 니진스키는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그들의 유산은 살아남았다. 발레를 죽어가는 오락에서 살아있는 예술로 바꿨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러시아가 서구를 따라가는 대신 자신만의 목소리로 세계를 설득했다는 사실이다. 스트라빈스키는 러시아 민요를 바꾸지 않았다. 농민들이 부르던 바로 그 노래를 가져왔다. 단지 그것을 세계가 들을 수 있는 언어로 번역했을 뿐이다. 그리고 세계는 그 진정성에 감동했다.

1909년 파리의 밤, 니진스키가 중력을 거스르며 날아올랐을 때, 관객들이 본 것은 단순한 도약이 아니었다. 러시아가 러시아이기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세계가 될 수 있다는 증명이었다. 특수한 것이 보편이 될 수 있다는 진리였다. 1910년 파리에서 증명되었고, 2026년 서울에서 다시 증명되고 있다. 세계는 언제나 진정성 있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불새의 깃털》은 100년이 지나도 여전히 빛나고 있고, 그 빛은 이제 더 많은 색깔로, 더 많은 이야기로 세계를 밝히고 있다.

디아길레프가 말했다. “불가능한 것을 실현하는 것이 흥미롭다.” 그는 재능 없는 작곡가였지만, 세기의 예술 혁명을 이끌었다. 스트라빈스키는 촌스럽다고 여겼던 러시아 민요로 세계를 정복했다. 니진스키는 중력을 거부하며 하늘을 날았다. 그들이 우리에게 남긴 메시지는 명확하다. 자신의 뿌리를 부끄러워하지 마라. 가장 특수한 것이 가장 보편적이 될 수 있다. 세계는 언제나 진정성을 갈망한다. 그리고 불가능은 단지 아직 실현되지 않은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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