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쇼핑

어디까지 알고 계시죠?

by 손하임

매년 추석 즈음이 되면 엄마와 나는 상봉동에 있는 한 스님을 찾아간다. 주로 아침 열 시 정도 출발하는데, 그래야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만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둘째 이모다. 엄마와 둘째 이모는 몇 년 전에 크게 싸워 얼굴을 안 보는 사이가 되었는데, 두 사람의 공통 지인이 바로 그 스님이다. 스님은 엄마와 거의 40여 년을 알고 지낸 사이다. 처음에는 둘째 이모의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이었다. 이모와 엄마는 그 당시 면목동에 살고 있었는데, 그 스님도 그 근처에 터를 잡고 있었다. 자매는 사고뭉치 남동생이 언제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살 수 있을지를 무척이나 궁금해했다. 스님은 삼촌에 대해서 심성이 나쁜 사람이 아니고, 지금은 좀 방황을 하고 있을 뿐이니 결혼을 하고 나면 누가 잔소리하지 않아도 알아서 자리 잡을 거라고 했다. 어쨌든 그렇게 시작된 인연이다. 스님은 엄마보다도 이모와 더 친했다. 그러니까 이모의 ‘연화보살’이 스님인 셈이다.



그 스님으로 말할 것 같으면 진짜 스님은 아니고, 스님이 될 뻔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늘 그곳에 가면 승복 바지를 입고 있었고, 축원을 해줄 때는 회색 두루마리를 걸쳐 입었다. 그리고 부처님을 모셔 놓고 있으니 그냥 편한 대로 엄마는 스님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스님은 무당이다. 법당이라고 말하기에는 초라한 낡은 건물 2층에 위치한 그곳에는 무당집 특유의 향냄새가 진하게 배어 있다. 엄마는 스님을 만나러 갈 때 늘 출발 직전에야 오늘 간다고 전화를 한다. 뭔가 상대의 허를 찌르는 느낌으로. “너무 예의 없는 거 아냐?” 하는 내 말에도 엄마는 신경 쓰지 않는다. 엄마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내 추측인데, 미리 약속해 놓으면 행여나 이모의 귀에 우리가 온다는 소식이 들어갈 까봐 그런 것 같다. 나는 늘 우리의 도착과 동시에 이모가 그곳에 앉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모와 엄마의 싸움은 언제 구경해도 짜릿하다. 엄마는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논리로 이모를 피하기 위해 아침 일찍, 당일 통보로 스님의 신당을 방문한다. 게으름뱅이 이모는 엄마처럼 새벽부터 부지런을 떨지 못할 테니.



내가 스님을 처음 본 것은 여덟 살 즈음이다. 엄마는 나를, 둘째 이모는 자기 막내아들을 데리고 스님이 자리를 잡은 신당으로 찾아갔다. 처음 스님을 보고 느낀 인상은 ‘예쁘다.’였다. 스님은 진짜 예뻤다. 키도 컸고, 몸매도 늘씬했고, 얼굴도 영화배우 빰 쳤다. 예뻐서 계속 쳐다봤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스님은 칠십이 넘었지만, 예쁘다. 몸매도 늘씬하고, 허리도 꼿꼿하다. 무당이 안 됐으면 영화배우가 되었을 것 같다. 언젠가 엄마한테 그런 소리를 했더니 엄마는 혀를 끌끌 차면서 “팔자가 더럽게 세.” 라며 그녀에 대한 사연을 풀어 주었다.



스님은 어렸을 때부터 예뻤다. 동네가 들썩일 정도로. 아주 시끄러운 연애 문제를 몇 번 일으켰고, 아버지는 그녀를 절에 집어넣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스님과 연애 스캔들이 터졌다. 이번에는 좀 심각했다. 임신을 했기 때문이다. 애심이 불심을 이겨버린 것이다. 절을 떠난 젊은 두 남녀는 아이를 낳고 평범하게 사는 듯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는 어딘가의 절로 떠났고, 그녀 또한 아이를 친정에 맡기고 절을 찾아 떠났다. 그때마다 애심이 불심을 이겨버린 사건이 연이어 터졌고, 신도와의 연애, 유부남과의 연애를 두루 거치다가 서른이 되기 전에 신령을 받게 되었다. 그 모든 트러블이 신병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녀는 그 후 자중한 삶을 살았다. 그녀의 마지막 남자는 아무래도 지금 함께 살고 있는 분이겠지. 십여 년 전에 만난 남자인데, 스님보다 열세 살이나 어리다. 하지만 당뇨를 앓고 있어서 스님보다 훨씬 더 나이가 들어 보인다. 그럼에도 스님은 안정되어 보인다. 칠십이 넘었으니 이제는 불심으로 대동단결 했을 수도.



엄마는 스님을 찾아갔을 때, 궁금한 것을 묻거나 고민을 털어놓지 않는다. 그냥 서로의 건강을 묻고, 짜장면을 시켜 먹는다. 그러기에 엄마를 따라나선 나도 고민거리를 털어놓지 않는다. 그냥 옆에서 엄마와 스님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들으며 짜장면을 먹는다. 그런데 가끔씩 스님이 툭, 툭, 말을 뱉어낸다. 몇 월에 차 조심을 하라는 말이나, 너 이번에 좋은 일 있겠다, 하는 말들. 그럴 때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네, 알려 주셔서 감사해요.” 하고 말하지만 솔직히 다 믿지는 않는다. 이유가 있다. 스님의 신통력에 대해 강한 불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 집 ‘대주’ 때문이다.



우리 집 대주, 그것은 아빠를 말한다. 우리 집 대주는 진작에 집을 나갔고, 엄마는 그에 맞춰 대주와 갈라섰다. 그리고 몇 년 후 재혼을 했다. 따라서 우리 집 대주는 바뀌었는데, 스님은 그 사실을 모른다. 우리 집 대주를 여전히 ‘뱀띠생’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지금 현재 우리 집 대주는 ‘용띠생’이다. 아무튼 엄마는 여전히 뱀띠생 대주와 함께 살고 있는 것처럼 굴었다. 그래서 스님이 “너희 집 대주가 올해…” 따위의 말을 할 때는 민망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다. 그럼에도 그 와중에 드는 생각. 이모가 의리는 있구나. 엄마는 재혼이 약점이라고 여기는 사람이었고, 여간해서는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을, 그것이 엄마에게 상처가 되리라는 것을 이모는 알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이모는 또한 현명했다. 아마 스님 입에서 재혼 이야기가 나왔다면 엄마는 이모의 가장 불편한 진실을 말했을지도 모른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문득 나는 스님에게 재혼사실을 알리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엄마에게 넌지시 물었다. 그랬더니 엄마는 “쓸데없이, 뭐 하러.” 하고 일축해 버렸다. 나는 그동안 스님이 엄마에게 했던 말들을 떠올렸다. 엄마는 개띠, 아빠는 뱀띠. 두 사람은 상극이라 헤어져도 열두 번 헤어졌어야 했는데, 너 참 대단하다… 어떻게 그렇게 참고 사니… 그런 위로의 말들. 만약 재혼했단 사실이 드러나면 그 모든 순간들이 연기처럼 사라지겠지. 그러고 보니 어쩌면… 하는 생각도 든다. 스님은 모두 알고도 모른 척하고 있는 건 아닐까? 모든 걸 알고 있다고 아는 걸 모두 내뱉을 필요는 없는 거니까. 스님을 그렇게 믿지 못한다면 이모가 시월 고사도, 삼재 액땜도 스님에게 맡길 이유는 없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엄마가 슬쩍 말을 꺼낸다. “스님이 그랬잖아. 너 딸 낳으면 그 아이가 돈을 벌어다 준다고… 그러니까… 이제 슬슬 결혼을…” 아직 시집도 안 갔는데, 벌써부터 딸이라니. 후… 한숨을 내쉬었다. 엄마는 스님에게 나에 대해 언제나 이런 식으로 말한다. “우리 얘가 남자를 너무 몰라. 공부만 하고 도통 남자를 만나야지.” 엄마… 진짜 그렇게 믿고 싶은 거야, 아니면 믿고 있는 거야? 엄마도 그렇고 나도 비밀이 없다는 듯 연기하는데 능하다. 그에 반해 스님은… 모른 척하는데 능한 것일까? 스님, 도대체 어디까지 알고 계신가요? 그냥 적당히 장단을 맞춰 주고 계신 건 아닌지… 우리의 깜짝 방문이 불편하신 건 아닌지… 심히 우려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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