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쇼핑

고냐 스톱이냐를 결정해야 할 때

by 손하임

“오늘 시간 있어?” 학부 동기이자 대학원 동기인 아라(가명)가 뜬금없이 톡을 해 왔다. 오랜 시간 연락을 하지 않은 터라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애매했다. 그러는 사이, 아라에게서 계속 톡이 들어왔다. 정리를 하자면 ‘어디를 같이 가줬으면 좋겠는데, 혼자서는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쩐지 거절하면 내내 마음이 불편할 것 같아서 알았다고 해버렸다. 그녀가 가고 싶은 곳은 신당동에 있는 무당집이었다.



“혼자 가는 건 좀 무서워서…” 아라는 그렇게 말했다. ‘무당쇼핑’을 다니는 내 소식을 들었다면서. 그녀는 나에게 “너 ‘무당석사’로 소문이 나 있어.” 하고 말했다. 무당석사라니… 박사가 아니고? 칫! 조금 섭섭함을 느끼고 아라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신당동의, 한 무당집에 도착했다. 아라는 자신의 하얀 아우디를 어렵사리 주차하고 나서 바로 들어가면 된다고 했다. 예약을 했다면서. “여기 알아?” 묻는 아라의 말에 나는 처음 와 본다고 말했다. 단층 주택의 대문 옆에는 빨간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신당동의 그 무당을 편의상 ‘엄보살’이라고 부르겠다. 엄보살은 50대 후반쯤으로 보였다. 앞머리를 시원하게 뒤로 넘겼다. 이마가 꼭 콜드크림을 잔뜩 바른 것처럼 번들 거렸다. 그 이마를 보고 있는데, 엄보살이 나를 슬쩍 보더니 점 안 볼 사람은 거실에서 기다리고 있으라 했다. 그 말에 아라는 화들짝 놀라더니, 친구라면서 같이 있고 싶다고 했다. 엄보살은 그럼 그렇게 하라고 담백하게 말하더니 우리를 신당으로 인도했다. 어차피 가정집이라 거실에 있어도 안에서 주고받는 말들이 다 들릴 것 같았다. 게다가 엄보살이 속삭이며 말할 타입 같아 보이지도 않았다.



엄보살은 아라를 지그시 바라보더니 슬쩍 미소를 짓고 나서 궁금한 것을 말해보라고 했다. 아라는 자신의 남자 친구 이야기를 꺼냈다. 나도 학교 앞에서 몇 번 본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매번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정문 앞에서 아라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라가 팔짱을 끼면 순하게 웃는 얼굴이 착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제 남자 친구가요… 지금 아는 사람들이랑 사업을 좀 하고 있는데요… 올해 잘 될까요?” 엄보살은 남자친구의 사주를 물었다. 아라는 남자친구의 생년월일시를 답했다. 엄보살은 사주를 보더니, 방울을 흔들었다. 그러더니 아라를 보며 “잘 되는 게 어떤 수준인데?” 하고 물었다. 아라는 올해 만들고 있는 게임이 출시되고, 대박이 나서 서울에 아파트 전세를 얻고 결혼까지 갈 수 있을 것인지를 물었다. 엄보살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이 남자 사주에는 돈이 없어. 그리고 있잖아… 게임인가 뭔가도 올해 안 나올 거 같은데?” 아라는 곧 울 것 같은 얼굴로 물었다. “그럼 성공은 해요?” 엄보살은 고개를 가로로 저었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그래도 아가씨가 사주에 돈을 물고 태어났어. 다행이네.” 했다. 그 말이 아라를 더욱 절망으로 몰아붙이는 것 같았다. “안 되는데… 그 사람이 돈이 있어야 하는데…” 엄보살은 “그래도 둘 다 없는 것 보다야 낫지.” 했다. 아라는 조심스럽게 한 가지를 더 물었다. “그럼… 이 사람하고 결혼은 할 수 있어요?” 나는 속으로 가슴을 치고 있었다. ‘아라야… 그건 너의 의지에 달린 일인 것 같은데…?’ 하지만 어쨌거나 엄보살은 아라가 묻는 말에 답을 해 주었다. “올해, 결혼운은 들어와. 둘이 궁합은 좋아.” 하지만 그 말은 아라를 전혀 위로해 주지 못했다.



무당집을 나와 우리는 술을 마시러 갔다. 그 자리에서 나는 아라와 그 남자 사이에 대해 꽤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아라는 그 남자(앞으로 편의상 철수라 부르자)와 4년을 연애했다. 연애하는 동안 내내 엄마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혔다. 아라 엄마의 거친 의견에 따르면, 철수 씨 부모님은 임대 아파트에 살고 있었고(비빌 언덕이 없다), 철수 씨의 학벌이 아라에 비하여 형편없었고(머리도 좋지 않다), 게임 대박이라는 허상에 사로잡혀(허황된 꿈을 좇는다), 인생을 쓰레기통에 처박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라는 4년이라는 시간 동안 철수 씨를 실드 치느라 마음이 너덜너덜 해진 상태였다. 아라 엄마의 마음도 이해 가지 못할 바는 아니었다. 내가 알기로 아라네 집은 꽤 잘 살았다. 외모도 괜찮았다. 하지만 조금 있으면 결혼 시장에서 ‘노처녀’ 딱지가 제대로 붙어 버린다. 아라의 엄마는 철수 씨와 빨리 정리하라고 난리였다.



“게임 대박 안 나면 결혼 안 할 거야?” 내 물음에 아라가 답했다. “할 거야… 할 건데… 그거라도 대박 나야, 엄마한테 당당하게 나설 수 있지.” 아라에겐 엄마의 인정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았다. “결혼하고 나서 대박 날 수 있잖아.” 내 말에 아라는 답답한 얼굴로 말했다. “대박이 안 나면 결혼을 못 한다니까.” 아라는 잔에 남아 있는 소맥을 쭈욱 들이켰다. 아라는 내가 아는 무당집이 있는지를 물었다. 한 번 더 물어보겠다고. 그 남자는 알고 있을까? 자신이 만들고 있는 게임이 결혼이라는 운명과 연결되었음을. 술에 취한 아라는 자신 없는 투로 덧붙였다. “철수는… 나 보고 알아서 하래. 헤어지고 싶으면 헤어지자고… 그게 사랑하는 여자한테 할 말이야?” 글쎄… 모르겠다, 하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한 가지는 명확하게 알 것 같았다. 철수는 아라의 사랑에 확신이 없을 것이다. 사랑은 그 사람의 성공여부와는 상관없는 영역이므로. 오히려 그 사람이 실패하더라도 상관없이, 그 사람의 꿈을 지지하는 것이니까. 아라도 한 때는 그런 마음으로 철수를 바라봤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철수의 성공이 중요해지기 시작했을 테고. 나는 아라에게 내가 아는 무당 한 명을 소개해 줬다. 하지만 이번에는 나와 함께 가자고 톡을 하지는 않았다.



아라의 톡을 받은 것은 1년 정도 지난 후였다. 아라의 모바일 청첩장이었다. 신랑의 이름은 철수가 아니었다. 멋들어진 스튜디오에서 풍성한 드레스를 입고 있는 아라는 누구보다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그 미소가 진짜이길 바라며, 엄지 척 이모지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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