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연둣빛으로 시작되었다.
봄의 끝자락, 여름의 문턱에서
조금 이른 햇살이 우리를 길 위로 부른다.
아내의 귀한 휴일에 맞춰
고향 충주로 떠나려던 계획은
우주의 갑작스러운 장염으로 이틀 미뤄졌다.
작고 여린 몸이 겪는 작은 아픔 앞에서
우리의 발걸음은 잠시 멈춰야 했다.
회복은 다행히 빠르게 찾아왔다.
우주의 눈빛이 다시 반짝이고,
식욕도 돌아왔다.
그리고 마침내
우주의 손을 꼭 잡고, 강변역에서
충주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터미널에 들어서자
수십, 어쩌면 백여 대의 버스가
거대한 퍼레이드처럼 늘어서 있었다.
우주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한다.
“우와, 버스 너무 많아요.”
그 말 한마디에,
어른이 놓친 설렘이 다시 되살아난다.
길 위에서의 출발이
모험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연휴라 그런지, 도로는 평소보다 붐볐다.
창밖으로 풍경은 천천히 흘렀고
우리는 이야기하고, 졸고, 간식을 나누며
충주로 가는 긴 여정을 견뎠다.
예정보다 한참 늦게 도착했지만,
터미널 앞에서 기다리던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미소는
모든 피로를 씻어내듯 따뜻했다.
우주는 처음엔 수줍어하다가
이내 눈빛으로 반가움을 전했다.
가볍게 웃고, 할머니 손을 잡고
우리는 함께 저녁식사 자리로 향했다.
돼지갈비 냄새에 마음도 입맛도 풀렸다.
오랜만에 둘러앉은 식탁,
같이 밥을 먹는다는 것이
이토록 큰 위안이 된다는 걸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이 느끼게 된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우주는 자기 세상으로 뛰어들었다.
우당탕탕 방을 오가고,
소리치고, 뽀삐를 안고 구르고.
그렇게 제 마음대로 뛰놀 수 있는 공간이
우주에게는 얼마나 소중한 안식처일까.
서울에서는 조심조심 걷던 아이가
충주에선 마음껏 뛴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부모는 눈시울이 시큰해진다.
장인어른의 마당은 여전히 정갈했다.
텃밭 한편에는 파, 상추, 아스파라거스가
햇살을 품고 자라고 있었다.
여름이 되면 블루베리도 열릴 것이다.
작년, 우주가 처음 맛본 그 블루베리는
내가 살아오며 본 것 중 가장 컸고,
그 열매 하나에
한 계절의 공기와 수분과 정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우주는 파릇한 잎을 만져보고,
고양이와 장난을 치고,
할머니 품에서 졸기도 한다.
시간은 천천히 흐르고
어른들은 그 틈에 차 한 잔, 혹은 술 한 잔을 기울인다.
저녁 무렵이 되면
마당에는 숯불 향이 퍼지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사이사이 대화를 덮는다.
장인어른은 고기를 굽고,
장모님은 소주를 따라주며 웃으신다.
우리는 말없이 음식을 나누고,
한 모금 술에 계절을 삼킨다.
그런 시간 속에서 문득문득
‘아, 고향이라는 건 이런 것이구나’ 싶다.
피로가 풀리고, 마음이 풀리고,
내 안의 긴장이 조용히 풀린다.
아내가 함께하지 못한 자리에
우주와 나만 있어도
두 분은 언제나처럼 따뜻하게 맞아주신다.
우리는 그 품 안에서 며칠을 잘 쉬고,
잘 웃고, 잘 먹는다.
하지만 다시 돌아가는 날이 오면
귀가엔 늘 아쉬움이 묻어난다.
차창 밖으로 멀어지는 충주의 풍경을 보며
다음에는 조금 더 오래,
조금 더 천천히,
머물 수 있기를 바란다.
우주의 손을 꼭 잡고
내 마음속으로 다시 약속해 본다.
‘다음에, 우리 또 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