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와 함께 저축하는 마음의 햇살
요즘 나는, 무척 행복하다.
딱히 큰일이 생긴 건 아니다.
그저 아이가 조금 더 말을 알아듣고,
조금 더 말을 걸어오고,
조금 더 나를 닮은 웃음을 지을 뿐인데
세상이 다정하게 느껴진다.
예전엔 알 수 없는 이유로 떼를 부리던 우주가
이제는 “아빠, 나 지금 속상해”라고 말해준다.
섭섭할 땐 토라진 표정으로 눈을 흘기지만
금세 어리광으로 바꾸어 손을 내민다.
말이 되니 마음이 보인다.
말이 되니, 사랑이 더 많이 샘솟는다.
저녁이면 편의점 맥주 몇 캔을 들고 집으로
돌아온다.
지인들과 마주 앉아 이야기 나누던 자리보다
우주와 함께 앉아 그림책을 넘기고,
서툰 설명을 귀 기울여 듣는 시간이
더 설레고, 더 고맙고, 더 소중하다.
아이의 하루는 금처럼 반짝이고,
나는 그 빛을 따라 하루를 정리한다.
며칠 전, 미사에서 차를 타고 가던 우주가
넘버블럭스 뮤지컬 현수막을 보며 말했다.
“엄마, 나 저거 보고 싶어.”
아내는 그 말에 주저 없이 7월 공연 예매를 했다.
그런데 공연장에선 손가락을 빠는 아이는
입장이 안 된다는 말을 듣고 우주는 바로 손을 뺐다.
그러곤 조심스레 묻는다.
“아빠, 손가락 안 빨았다고… 거짓말해도 돼?”
보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컸을까.
그 조그마한 입에서 나온 그 질문에
나는 웃으면서도 가만히 안아주었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정직한 마음으로도, 넌 꼭 들어갈 수 있을 거야.”
거짓말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진심이면 그 마음이 닿을 거라고.
하루하루, 아이와 보내는 시간은
든든한 저축 같다.
은행의 잔고가 아니라
사랑의 이율이 붙는 마음의 예금.
언젠가 아이가 먼 길을 떠날 때,
이 시간들이 나를 버텨줄 것이다.
아내와 연애하던 시절처럼
요즘의 나는 자주 두근거린다.
우주의 잠든 볼에 뽀뽀를 하며 하루를
마무리할 때면
참 잘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다시 다짐한다.
더 잘 걷고, 더 잘 먹고, 더 잘 자자고.
육아는 결국 체력이고,
체력은 결국 사랑을 버티게 하는 마음의 힘이니까.
아이를 기다려주는 일.
아이를 위해 밥을 짓고,
아이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일.
그건 나의 ‘잘됨’‘괜찮음’에서 시작된다는 걸
요즘 자주 느낀다.
우주를 더 잘 사랑하기 위해
나는 나를 더 잘 돌보려 한다.
사진 속 아이가 웃고 있다.
그 웃음 하나로도 나는 하루를 산다.
유치원에 간 아이가 보고 싶고,
잠든 아이가 그리워서
살며시 이불을 들추고 뺨에 입 맞춘다.
하루가 또 그렇게,
작고 큰 사랑으로 저금되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