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생신에서 군산과 서산까지
가을은 늘 우연처럼 다가온다. 작은 인연 하나가
길을 만들고, 그 길 끝에는 언제나 새로운 축제가
기다린다.
어머니의 생신날, 가족 여섯이 모였다. 아버지는
일터를 마치고 곧장 오셨고, 조카는 학원을 마치고 늦게 도착했다. 우주는 어머니가 직접 픽업해 데려왔고, 나는 아내와 함께 미사역까지 걸어가며 가을 저녁 공기를 느꼈다. 바스락거리는 낙엽 소리와
담담한 대화가 그 자체로 선물 같았다.
식당에 둘러앉아 어머니께 축하를 전하는 시간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따뜻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우주는 마을버스에서 연신 벨을 눌렀다. 기사님은 그 모습을
기꺼이 받아주었고, 나는 승객들에게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미안함보다도고마움이 더 크게 자리했다. 작은 배려와 웃음이
어머니의 생신을 더욱 빛나게 만든 순간이었다.
군산으로 떠난 즉흥 여행
그날 저녁, 아내가 말했다. “우리, 놀러 갈까?”
취소된 내 일정과 아내의 하루 연차가 맞물리자,
그 말은 금세 현실이 되었다. 몇 번 다녀온 속초와
강릉은 제외하고, 작년에 부모님과 우주만 함께했던 군산 이야기가 나왔다. 아내가 반색하듯 고개를
끄덕였고, 그렇게 여행의 방향은 정해졌다.
친구에게서 받은 맛집 리스트는 보물지도 같았다. “일단 1박, 컨디션 되면 2박.” 그렇게 우리는 즉흥
여행을 합의했다. 준비보다는 마음이 먼저 앞섰다. 여행이란 원래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군산에서의 하루
새만금방조제를 달리는 길 위, 바람은 짭조름한
바다 냄새를 안고 불어왔다. 차창 너머 풍경은 가을빛으로 차분했고, 뒷좌석 우주의 수다는 노래처럼 흘러나왔다.
숙소에 도착하니 호수공원이 창 너머로 펼쳐졌다. 저녁 식사로 찾은 이자카야의 후토마끼와 항정살은 기대 이상이었다. 우주도 맛있다며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아내와 오랜만에 소주잔을 기울였다. 식사 후 공원에서 달리기를 하며 우주와 함께 웃음을
터뜨렸고, 숙소로 돌아와 샤워 후 맥주잔을
부딪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서산에서의 뜻밖의 만남
아내가 말했다. “해미읍성에서 축제가 열린대.”
마침 그곳은 내 군생활 선후배들이 전통음악을
이어가며 공연을 준비하는 자리였다. 오래된 인연이만들어낸 놀라운 우연에 우리는 크게 웃었다.
축제장은 북소리와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우주는
제기차기와 승마체험에 빠져 즐거워했고, 나는 무대 위 선후배들의 사물놀이를 보며 마음이 뜨거워졌다. 오랜만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함께했던 시간이
떠올라 반가움과 그리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저녁에는 형들과 시장에 들러 꽃게와 대하를 사서 초장집으로 향했다. 쪄낸 꽃게와 싱싱한 대하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세월을 건너온 우정의
맛이었다. 술잔을 부딪치며 나눈 대화 속에서,
아내는 흐뭇하게 웃었고, 우주는 그 자리 또한
하나의 축제임을 느끼는 듯했다.
여행은 늘 계획보다 우연이 많다. 하지만
그 우연이야말로 우리 삶의 선물이다.
어머니의 생신에서 시작된 하루가 군산의 바람을
지나 서산의 축제로 이어졌다. 그 길 위에서 우리는 확인했다. 가족이 함께라면 어디든 축제가 된다는 단순하고도 깊은 진실을.
집으로 돌아오는 길, 피곤한 몸은 잠에 빠졌지만
마음만은 여전히 반짝였다. 나는 속으로 다짐했다. 언젠가 또 다른 날, 또 다른 길 위에서도,
이렇게 웃고 사랑하며 함께하자고.
그리고 그 다짐은 결국 하나의 문장으로 남았다.
“우리 가족,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