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가위에 매우 자주 눌렸다.
처음은 7살 때였다. 밤에 주황색 스탠드를 켜놓고 온 가족이 다 같이 안방에서 자고 있었는데, 꿈을 꿨다. 내 시점은 아파트 10층 이상의 높이. 미음 자로 아파트가 둘러싼 지상 주차장을 내가 내려다보는 꿈. 낮이었다. 자전거들이 그 미음 자 주차장을 뱅뱅 돌고 있었고, 숨이 안 쉬어졌다. 꿈에서 깨어나서 울었다. 엄마는 내가 가위에 눌린 것이라고 했다.
그 후 주기적으로 가위에 눌렸던 시기가 있었는데, 초*중학생 때 새벽미사 복사를 섰던 날들이었다. 3학년, 첫 영성체를 받고 겨울에 몇 달간 해도 뜨지 않은 5시에 일어나 매일 새벽미사에 출석해야 하는 것이 복사단 입단 조건이었다. 미사가 끝나면 서서히 해가 밝아오고 있었다. 그때가 매우 추웠다. 차 시트가 차가워 앉는 것이 괴로웠다. 그 시절 엄마 핸드폰의 모닝콜 음악은 끔찍하면서도, 후에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어떤 음악이라도 그러했을 것이다.
몇 달간 매일 새벽미사를 다녔던 시기에는 가위에 눌리지 않았다. 새벽미사에서 돌아오면 뜨거운 코코아를 마시며 성경을 필사하고, 느낀 점을 써야 했기 때문에 잠을 잘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후 복사단에 입단하고 새벽미사 복사를 서고 난 후, 집에 와서 잠을 다시 잘 때마다 가위에 눌렸다. 초기에는 가위에 눌리는 것이 두려웠다. 사실 내가 두려워했다는 사실만 기억할 뿐, 그 두려움은 이미 기억에서 사라졌다. 가위눌림의 원인은 몸의 수면 상태와 뇌의 비수면 상태가 공존하는 것 때문이라고 알고 있다. 성당에 다녀와서 이미 정신은 깨어났지만, 새벽에 일찍 일어나 한 시간 이상 긴장하며 사용된 몸의 피로가 조합되어 그리 된 듯하다.
중학생 시절 이후로는 낮잠을 잘 때 거의 무조건 가위에 눌렸다. 이때부터는 이미 가위눌림에 익숙해졌기에 가위에 눌려도 '아, 왔네' 하고 가위를 풀려고 숨을 가다듬거나, 아예 가위를 풀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어차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또한 이때부터 가위눌림은 연속적으로 오기 시작했다. 한번 풀고 다시 자면 두세 번 정도, 많으면 다섯 번 이상도 찾아왔다. 그러다 결국 다시 정상적인 잠에 들고, 일어난 후엔 가위에 눌렸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하다가 생활을 하며 어떤 자극에 의해 기억해내곤 했다. 지금도 그렇다.
가위눌림을 많이 겪다 보니 가위눌림에 대해 알아낸 사실들이 꽤나 있다. 나의 경험은 이렇다.
우선 가위에 눌리며 꾸는 꿈의 종류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한 가지는, 내가 7살 때 처음 가위에 눌린 것과 같은 '대부분의 일반적인 꿈과 같이 나의 물리적 주변이 반영되지 않은 꿈'이다. 쉽게 말해, 평소처럼 꿈을 꾸는데 숨이 잘 안 쉬어지고, 몸이 속박된 듯한 느낌이 드는 꿈이다. 요즘은 나에게 매우 드물게 찾아오는 꿈이다.
또 다른 것은 '내가 자고 있는 물리적 장소가 반영된 꿈'이다. 나는 가위에 눌리면 대부분 이 유형의 꿈을 꾼다. 이 유형의 꿈에 대해 흥미로운 사실들을 많이 알아냈다. 가위에 눌리면 어느 순간 내 주변이 보인다. 흐릿하게 어렴풋이 보일 때도 있고, 선명하게 보일 때도 있다. 침대에서 자고 있다면 천장, 벽면, 장롱, 걸려있는 옷들, 맞은편 방문 등이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배경을 중심으로 꿈이 전개된다. 예컨대 내가 이 유형의 가위에 눌리고 있는데, 마침 엄마가 방에 들어왔다. 나는 엄마에게 '나 좀 깨워줘!'하고 소리를 친다. 일어나고 보면, 엄마는 내 방에 들어온 적도, 나는 소리친 적도 없다.
이 부분에서 알아내지 못한 것과 알아낸 것이 있다. 우선 알아낸 사실은, 가위에 눌리기 전의 시점 언젠가에 내가 본 주변의 모습이 꿈의 배경이 되고, 가위에 눌리기 시작하면 그 배경을 기초로 허구가 펼쳐진다는 것이다. 알아내지 못한 사실은, 그 배경이 되는 시점이 언제이냐는 것인데, 가위에 눌리기 직전 어렴풋이 감은 듯 감지 않은 듯한 눈동자에 비친 주변의 모습인지, 아니면 잠에 들기 전 내가 본 방의 모습인지 아직까지 모른다.
그리고 작년에 알아낸 또 다른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어느 날 오후, 나는 낮잠을 자다 가위에 눌렸다. 깨어난 후에도 계속해서 눌릴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난 핸드폰 카메라로 나의 자는 모습을 동영상 촬영했다. 가위에 눌린 상태에서 소리치고, 잘 되지는 않지만 손, 발을 움직이는 것들이 내가 실제로 조금이나마 꿈틀거리는 것인지, 아니면 완전한 허구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머리를 쓰느라 잠이 조금 깼는지 쉽게 가위에 들지 못하다 가위에 들었다. 열심히 소리치고, 꼼지락대 본 후, 깨어나자마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카메라를 확인했다. 가위에 눌리기 시작한 시점부터 내 눈꺼풀이 엄청나게 떨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눈꺼풀을 뺀 나머지의 나는 고요했다.
가위에 눌리며 깨어나는 방법을 터득했다. 흔히들 신체 말단 - 손가락, 발가락 등 - 을 움직여서 몸 전체로 그 움직임을 퍼뜨리라는 말을 하던데, 나는 그렇게는 잘 되지 않았다. 나는 말로 표현하기는 어려운 호흡 조절로 가위에서 깨어나는데, 항상 숨을 크게 들이쉬면서 깨어난다.
가위눌림 중 귀신을 본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피아노 선생님의 동생이 가위에 눌릴 때마다 어떤 여자가 천장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말, 삼촌이 반 지하 방에 살 때 꼬마아이가 세발자전거를 타며 뱅글뱅글 삼촌 주변을 돌다 갑자기 달려들었다는 말들은 모두 흘렸다. 나는 삐-하는 이명 같은 소리와 숨이 잘 쉬어지지 않거나, 쥐가 나는 느낌의 증상들 밖에 겪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증상들이 다양해졌다. 소리의 패턴(멀리서 들려오거나, 가까이서 들려오거나, 크게 들리거나, 작게 들리거나, 혹은 이러한 것들이 다양한 방식과 순서로 조합되는)이 다양해졌고, 소리의 성격(삐-하는 소리, 웃음소리, 비명소리 등)도 다양해졌으며, 몸에 무언가가 닿는 느낌이 들어 소름이 돋기도 했다. 그러던 중, 지옥에 다녀왔다.
술을 꽤나 마신 날이었다. 밤늦게 집에 들어와 침대에 누웠는데,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불을 끄지도, 씻지도, 옷 갈아입지도 않은 채로. 그러다 새벽 서, 너 시에 깼다. 잘 준비를 다 하고 잠을 청했다.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시간이 좀 흐른다 싶더니 갑자기 가위가 왔다.
깜깜한 밤, 갑자기 내 오른쪽에 시커먼 형체가 서있는 것이 어렴풋이 보였다. 여자 비명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어 정신이 없다. 온몸에는 계속해서 소름이 돋고 있다. 갑자기 빗소리가 났다. '진짜로 비가 오나?' 그런데 천장에 검은 물자국이 생긴다. 비가 내 등 밑에서 천장으로 쏟아지고 있었다. 정신없는 와중, 내 침대 오른쪽 밑에 닿아있는 옷걸이에 걸린 나의 청바지가 눈에 들어왔다. 바지 밑단을 접어놓은 것이었는데, 그 바지에 비쩍 말라비틀어져 갈색이 된 사람의 다리가 끼어있었다. 그리고 요란한 소리들이 내 정신을 흩트리는 와중, 어느새 그 청바지에 낀 다리가 내 오른쪽에 와 있었다.
물론 가위눌릴 당시는 당황스럽고 무서웠다. 그렇지만 깨고 나서는 '와.....ㅅㅂ.....' 한 마디하고 다시 잘 잤다. 허구라는 것을(뭐, 아닐 수도 있겠지마는) 잘 알기 때문이다. 아마 술 때문에 그런 특이한 경험을 했지 싶다.
2017.0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