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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의 반대말은?

인간은 누구나 외롭다

by 나원

“인간은 늘 외롭고 고독하다. 고독과 함께 살아야 한다.”



그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수년 전의 나는, 외삼촌이 많이 외로우신 것 같다고 걱정했다. 그때의 나는 외삼촌을 외로운 사람으로 치부했다. 외로움이란 극복하거나 제거해야 할 대상이라고 봤던 것이다.




문득 외로움의 반대말이 무엇인가 궁금해서 찾아봤지만 그 어떤 사전을 뒤져도 나오지 않았다. 결국, 모든 인간은 외롭다는 것이며 외로움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 누구도 내가 아니고, 타인은 타인이며 ‘나’는 ‘나’로서 존재한다. 심지어 사람들은 “나도 나 자신을 모르겠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니 타인을 온전히 알고 온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결국 사람은 필연적으로 외로운 존재다.



사람들은 외롭기 때문에 그래서 결혼, 가정, 직업, 종교 등 많은 문화와 제도를 만들었을 것이라고 추측해 본다. 하지만 그것도 외로움에 대한 대항일 뿐이지 극복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는 결코 없을 것이다. 저런 문화, 제도들이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나타난다는 것은 도리어 인간이 외롭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일지 모른다.



외로움이란 인간의 기본 정서이다. 나 자신도 모르는 나는 스스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스스로를 완벽히 알 수 없기에 타인은 더더욱 알 수 없다. 때문에 인간은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적당한 거리감이 있는 게 모두에게 편하다는 생각에 일정 선을 긋기도 한다. 상처를 주지도 받지도 않거나 또는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러나 인간은 혼자 살 수 없기에 누군가를 옆에 두고 싶어 한다. 참 역설적이지 않은가. 혼자이고 싶으면서도 혼자인 게 싫다니.



철저하게 ‘혼자’로 삶을 살아가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타인에게 상처받으면서도 인간은 늘 타인과 함께하는 나를 갈망한다. 상처를 피해 어느 누구도 옆에 두지 않으려는 선택은 스스로를 더 외로움의 심연으로 빠지게 만든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에 대해 조심스레 나만의 답을 내놓자면,

우리는 함께 하고 싶은 이에게 ‘상처조차 감내하겠다’는 마음으로 그들과의 관계를 만드는 게 아닐까 한다.





“외삼촌, 이제야 그 말의 뜻을 조금은 알 것 같아요.”

20대의 끝자락에 서고서야 나는 외삼촌에게 저렇게 말을 할 수 있었다.


그런 나에게,

외삼촌은 답했다.



"앞으로 상처도 사람들에게 받겠지만 치유도 사람들에게서 받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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