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안 되는 단절
우정에 국한되는 얘기는 아니다. 모든 인간관계에 있어 예외란 없을 것이다.
내 인간관계 단절은 ‘나’와 상대방 둘만의 문제였던 때도 있었으나 제3자가 주요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과거에 나는 그들과 나의 단절이란 없을 줄 알았다. 절대 단절하지 않을 것만 같았던, 둘 중 먼저 결혼하는 사람이 있으면 부케를 받아주자는 이야기를 나눌 만큼 가까운 사이였음에도, 그들과 10년~20년 넘게 우정을 지속했어도 예외는 없었다.
나에게는 같은 중학교를 졸업한 친구들이 있다. 친구들은 모두 고향에 있고 그중 나만 서울살이를 하고 있지만 고맙게도 매년 친구들과 서로의 생일을 축하하고 때때로 안부를 주고받고 했다. 몇 년에 한 번 만나도 몇 달 전 만났던 것만 같은 그런 친구들이었다.
세월이 흘러 우리 4명 중에서 D가 가장 먼저 결혼을 하게 되었다. 나에게 결혼 소식을 전해주는 D와 한참 연락을 나누며 서로의 근황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딩크를 주장하던 친구 D가 출산 계획도 있다고 한다. 우리 중에 D가 먼저 결혼할 줄도 몰랐지만, 출산이라니. 삶은 늘 예측할 수 없는 것들이 더 많다. 어린 시절 친구에 대한 예측도 죄다 틀렸으니.
그렇게 D의 결혼식에 참석했는데 결혼식에는 친구 Y가 등장하지 않았다. D의 결혼식이 끝나고 H와 함께 Y를 만났다. Y는 우리에게 D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몹시 괴로워했다. 이미 Y와 D 두 사람의 관계는 상처로 얼룩져 있었다. 그런 Y는 H와 나에게 더 이상 연락하며 지내기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나는 그저 Y에게 나중에라도 괜찮아진다면, 문득 옛 친구들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면 시간이 얼마나 지났든 고민하지 말고 언제든지 연락 달라고 답을 했다.
누구 하나의 잘못이라 할 수도 없는 어린 시절 친구들과 우정의 결말은 우리 모두에게 제각기 상처로 남게 되었다.
과거의 나는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 그리고 모임에 참석하는 것을 즐기곤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인간관계의 씁쓸한 단면을 알아버린 탓일까. 지금의 내 모습은 그 때와는 상당히 다르다. 상처를 주는 일도, 받는 일도 피하고 싶어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세상에서 살고 있다. 누구도 타인의 세상을 알 수는 없다. 그래서 사르트르는 “타인은 지옥이다”라고 했으며 동명(同名)의 제목을 한 웹툰은 큰 반향을 일으켜 지금도 회자되는 것일까. 사람은 누구나 타인에게 아픔을 주게 된다. 완벽한 가해자도 피해자도 없다.
그래서 그런지 새로운 친구, 새로운 관계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에는 주저함이 앞서게 된다. 관계의 무게를 알아버린 데다가, 기존의 인연을 유지하고 지켜 내는 데에는 서로의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에 지금 내 옆에 있는 소중한 사람과의 관계를 다루는 것도 쉽지 않은 듯하다. 그래서 좀처럼 새로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마음을 여는 게 어려워 진다.
이후에도 누구와 관계가 끊어질지 그리고 언제 어디서 그들과 다시 만나게 될지 전혀 알 수 없다. 삶이란 늘 그렇듯 내가 예상 가능한 범위보다 그렇지 않은 부분들이 훨씬 더 많았으니. 그러니 인간관계를 마주하는 지금의 내 모습이 나중에는 또 변할 수도 있을까?
나의 생각이 변화해 가듯 지금 남아 있는 인간관계 또한 언제 어떻게 변화할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누구나 언제든 내 곁을 떠날 수 있고 나 또한 그들의 곁을 떠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지금은 내 옆에 남아 있어 주는 이들과의 관계에서 현재의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전부일 뿐인 듯하다. 서로가 서로를 영원히 떠나지 않을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