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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나 홍 Feb 04. 2022

늙어간다는 것


노화라는 말은 긍정적으로 사용되지는 않는다. 노화를 막기 위해 무엇이든 하는 사람은 있지만, 노화를 즐기는 사람을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일전에 읽었던 책에서 본 구절이 기억이 난다. 늙어가는 그 자체가 서럽다기보다는, 아직도 열정이 있고 욕망이 있는 정신이 점점 힘을 잃어가는 육체에 갇혀 있는 것이 서럽다고. 당장 서른도 되지 않았는데 몸이 삐걱거리기 시작한 나 자신을 보면, 나도 건강하게 늙어야 하는데 싶다가도 무엇을 하고자 마음을 먹는 게 참 쉽지가 않다.

여하튼, 세상 만물은 새것이었던 찰나가 지나고 나면 헌 것이 된다. 우리는 태어나 0.1초, 아니면 그보다 짧은 순간 동안 새것일 테고, 그 이후로는 생성보다는 수많은 소멸을 겪으며 늙어간다.​


어쩌면 새것이라는 건 물리적인 상태보다는 그것을 새것이라고 느끼는 마음가짐 같은 것이다. 이를테면 자주 열어보지 않는 책이 나에게는 새것일 수 있고, 아까워서 포장조차 뜯어보지 않은 무수히 많이 거래된 LP판이 누군가에게는 새것일 수 있다. (무조건 사면 뜯어봐야 하는 나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시장이긴 하다.)​


하물며 물건도 헌것이 되었어도 그것을 아껴주고 사랑해주는 사람이 많은데. 좀 사람도 살아가면서 내 헐어가는 인생을 아끼고 사랑해야 하지 싶다.

오랜만에 같이 일하게 된 상사가 있다. 내가 나름 사회의 새것이었을 때 만난 첫 사수였던 그분은 이제는 과장이라는 직급을 달았다. 약 6년 전 처음 만나 6개월을 같이 일하고, 한동안 뜸하다 다시 같이 일하게 된 지 3개월 남짓 지났는데, 비단 그 사이에 시간만이 흘러간 것은 아닌지, 과장님은 존경스러울 만큼 베테랑이 되었더라.

헌것이란 그런 것이다. 나 자체로 낡아가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수많은 것들을 흡수하며 익어가는 것. 갑분 쇼미더머니긴 한데.. 한동안 많은 짤들이 만들어지며 조롱받았던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라는 말은 마냥 우스운 소리만은 아니다.

그저 나이만 먹은 사람이 아니라, ‘바이브가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늙어가는 게 오히려 마음 편하지 않을까. 뭐든 거스르려고 하면 피곤해지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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