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까지가 진짜고 어디서부터 각색일까? 관전 포인트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싱가포르 소셜(Singapore Social)' TV쇼를 보지 않은 분을 위해 간단히 설명하면,
20,30대 청춘의 로맨스와 싱가포르에서 현시대를 사는 밀레니얼들의 삶을 보여주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제작 리얼리티 티비 프로그램이다. 싱가포르답게 다양한 인종이 출연하며, 다양화된 사회 속 곳곳에 자리한 아시아적 가치관도 엿볼 수 있다.
만약 이 프로를 본 친구들이 '정말 싱가포르에서는 사람들이 이렇게 살아?'라고 묻는다면 나는 '그렇다'라고 답할 것이다. (온라인과 싱가포르 본국에서 빗발치는 수많은 반발에도 불구하고.)
물론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티비 프로이므로 각색된 부분이 분명 존재한다.
그렇지만 대체로 landed property(사유지 위에 지어진 지붕이 있는 주택)에 사는 사람들, 그중에서도 좀 사시는 부모님을 둔 젊은 층들은 그렇게 산다. 아니, 정정하면 그렇게 사는 사람이 정말 있습니다.
내가 가깝게 지낸 싱가포르 로컬을 예로 들어 프로파일링 해보겠다.
▪️몇(십) 억대의 수입이 있는 회사를 자기 이름으로 운영하는 홀부모님(어머니 혹은 아버지)이 계신다
▪️40억 이상의 집 자가 소유 -물론 대출을 끼고.
▪️상층 사회의 부모님(각종 스포츠 클럽 멤버)
▪️자신이 스스로 혹은 부모님 사업을 돕는 형제가 있다
▪️다른 형제는 부모와 관련 없는 자기 사업을 한다(니콜의 경우 해당)
위와 같은 배경의 실존인을 더러 알고 있다. 어디나 그렇듯 같이 어울리는 사람들도 비슷한 층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식문화가 발달한 나라에서, 더위가 가시는 저녁에 지인들과 만나 외식을 하거나 주말에는 놀러 간다. 싱가포르가 워낙 작은 나라이기도하므로 이 나라가 질릴 때는 근교 국에 여행을 다녀온다. 홍콩 가서 명품백 몇 가지를 사 온다던지, 다음 주말에 인도네시아의 Yogakarta에 간다던지 하는 사례는 충분히 볼 수 있다.(메이 엄마가 지나가다 너무 예뻐서 사 왔어~한 프라다 가방은 그다지 무리하게 각색되지 않은 환경..)
출연자들
▪️수키 Suki Singapora: 30살의 발레스 라는 예술을 하는 아티스트이다. 발레스크는 쉽게 말해 고급화된 스트립쇼이다. 처음엔 마음이 참 여리구나 했다가 회차가 거듭할수록 얘는 누구한테도 싫은 이야기 듣기 싫고 좋은 사람으로 비치고 싶은 사람인 건가? 그게 아니면 본인을 속이는 건지.. 갑갑한 캐릭터로 등극한다.
▪️니콜 Nicole: 위에서 말한 아시아 전통 가치관을 니콜의 엄격한 어머니를 통해 보여준다. 가부장적인 가족 분위기도 한 몫한다. 이런 가치관이 본인이 살아가는 시대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엄마를 만족시키기 위해 엄청 애쓰는 대부분의 아시아 자녀의 양상을 대변한다. 쇼 보고 나서 드는 생각: 니콜 불쌍해 ㅠㅠ.
▪️메이 탄 Mae Tan: 9만 천명의 인스타 팔로워를 자랑하는 패션 인플루언서. 자기 옷가게 소유. 예쁘고, 젊고, 성공하고 대표적으로 화려한 인플루언서의 삶을 살고 있다.
▪️폴 Paul Foster: 싱가포리안 어머니와 영국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로 가장. 나이 지긋한 어머니를 부양하며 같은 집에서 지내고 있다. 폴 착해
▪️비니 Vinny Sharp 인도 계 유튜브와 인스타 인플루언서로 영상 제작. 가장 현실적으로 수긍 가는 캐릭터였다. 중간에 영상에 나온 비니 어머니 보고 깜놀. 인도인은 피부가 하얄수록 금전적, 사회적 위치도 높다. 3대가 모여 있던 집도 진짜 정말 컸다 = 왕. 부. 자.
▪️ 타비사 Tabitha Nauser 과거 싱가포르 아이돌 수상자로 여전히 음악 업계에서 활동 중.
관전 포인트
일단 추운 한국의 겨울을 나며 따뜻한(?) 그곳이 그리워질 때쯤 보게 된 데다 여기저기 아는 곳이 많이 나와서 그 장소를 추억하느라 바빴다. 싱가포르가 특히 적은 나라니, 어 저 건물 마리나 베이 근처 OUE 건물 로비인데, 어, 저기는 TBC(탄중 비치 클럽)인데, 아 저기 거리가 부기스 스트릿인데, 저기 뉴튼 호커 센터인데, 보타닉 가든인데, 저기 마리나 베이 몇 층에 있는 펍인데, 내가 가 본 곳인데 등등.
크레딧을 보니 싱가포르 관광 협회 또한 참여했다고 하니 외국인인 내가 가보았던 주요 명소들이 배경이 되는 게 당연할 것이다.
전통적인 가치관을 자랑했던(예: 여자는 일을 해도 마케팅이나 홍보 일을 해라. 여자가 무슨 회사를 차리니. 그것도 블록체인 회사를.) 기성세대와 우리 세대의 가치관 사이를 보여준다. 꼭 명절에는 친하지도 않은 친척이 과연 네가 잘 될까? 그러게 하라는 것이나 잘할 것이지 라며 요청하지도 않은 조언을 하고, 도발을 거는 흔한 모습들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기성세대의 영향권 안에 있다. 우리들만의 삶을 내 가치관에 따라 선택하고 살지만, 부모로 비추어지는 그들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하느라 에너지 무지 쓰고 있다.
메이의 경우 당장 아빠가 뉴욕으로 패션 디자인 스쿨 보내줄 테니 제발 가! 하고 내모는, 즉 경제적으로도 걱정이 하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아랍 스트릿에서 메이는 비니에게 이렇게 말한다. 글쎄, 가면 좋다고 생각은 하는데.. 싱가포르가 편하고 익숙한 걸 어떡해, 가면 또 새로 시작이고.. 쇼 후반부에 '남들이 나 진짜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라고 하는데, 사실 어릴 때 먹을 거 구하느라 힘드신 부모님을 지켜봤기 때문에 이게 얼마나 힘든 일이고 감사한 일인지 알아요'라고 말하며 캐릭터에 입체감을 더했다. 누구에게나 고민은 있다. 돈이 넘쳐나고, 좋아하는 것을 어린 나이에 잘하게 되어 유명해진 경우에도.
글로벌 한 세계 속 이제 인종이라는 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질문하게 되었다. 인도계 싱가포리안을 두었지만 코카시안?처럼 보이는 타비사와, 인도인인만큼 ~~ 할 거야 하고 선입견을 가졌지만 가장 쿨했던 비니, 그리고 유학을 압둔 메이의 질문: "엄마 나 양인(Ang Mo)이랑 만나면 뭐라고 할 거야?"에서도. 참고로 이 질문에 대한 엄마의 답은, 글쎄, 엄마는 반대한단다. 이유는 서양인들은 돈이 생기는 족족 여행 가는데 다 써버리고 인생을 즐기기 때문에. 아시아의 가치는 절약과 현명한 금전관리, 그리고 무엇보다 절제다.
싱가포르의 영어는 중국 어투가 강한 싱글리시라고 한다. 정말 웃겼던 게, 각 인물들이 카메라를 보고 독백할 때에는 영어를 참 잘 말하다가, 출연진을 제한 주변 친구들이나 가족들과 일상 속에 있는 화면에서는 싱글리시가 알게 모르게 스며 나온다는 것. 그래도 완전한 싱글리시는 들어보기 힘들었다. 폴이 가끔 유머를 위해 친구들에게 ~lah를 붙이며 억양을 살짝 써 주는 정도. 또 웃긴 건 처음 시작할 때는 싱가포르인인 메이랑 니콜 둘이 이야기할 때 정말 서구 영어 썼으면서 시간 지나니까 이들도 지쳤는지 점점 본토 발음에 비슷한 억양을 많이 냈다. ㅋㅋㅋ
메이와 메이의 친구의 대사 중 재미있었던 것. "싱가포리안 남자애들은 엄청 유약해. 그런데도 자기들보다 더 유약한 여자들을 찾고 있어."라는 대목이 인상 깊었다. 누구나 그곳에 살아 본 경험이 있다면 뼛속 깊이 그 의미를 알만한 대사.
현지 사람들의 반응
"Absolute Trash"
싱가포르 현지의 사람들은 이 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간택받은 소수의 상류층 출연자!
▪️타비사가 싱가포르 비욘세라는 것에 대한 이견
▪️누가 파크로얄 온 피커링 호텔 풀장에서 캐주얼하게 낮에 친구들이랑 만나서 수다 떠니?
▪️싱가포르 로컬 삶=호커센터인데, 누가 뉴튼 호커센터 가니
한마디로 "이 쇼에서 보이는 건 싱가포르의 실상과 너무 다르다."며 격분하는 반응을 많이 보이고 있다.
결론
그렇지만 언제부터 리얼리티 tv쇼가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었나?
이 쇼는 정확히 외부인의 시선에서 싱가포르에 대해 알고 싶은 , 싱가포르의 모습이라고 믿고 싶은 모습을 현실의 인물을 활용해 잘 보여준다. (비슷한 예: 영화 Crazy Rich Asians)
어찌 됐든, 나는 너무 재미있게 잘 봤다. 싱가포르의 사회에 대해 알고 싶은 분은, 혹은 그냥 오락거리가 필요한 분은, 다가오는 휴일에 보는 것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