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테크요..
내 첫 장편 소설은 완성도 못하고 폴더에 묻혔다. 글쓰기 수업으로 듣는 과외에서 공모전을 한 번 준비해보자고 하셔서 급하게 쓰게 됐다. 제출일까지 4주 남긴 시점에서 시작한 글은 분량을 맞추기 급급했다. 하루 5000자를 써내려 갔다. 이 전까지 내가 써온 글은 단편, 그중 초단편. 길어도 한 편에 4000자 정도 되는 글만 써와서 하루에 오천 자씩 쓰다가 쓰러질 뻔했다. 그렇게 일주일에 4번 하루 5000자를 14일 동안 쓰고 하얗게 불태웠다.
장편에 내 모든 창작력을 끌어 모으다 못해 바닥까지 박박 긁어다 썼다. 다 긁어 써서 창작력이 고갈됐구나 느껴졌다. 분량만 겨우 맞춰서 공모전에 제출했다. 그게 끝인 줄 알았는데, 장편을 시도해봤으니 단편을 쓰자고 하셨다. 뭐든 하겠다고 던져 놓으면 미래의 내가 알아서 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선생님의 제안을 수락했다. 그리고 다시 시작된 글 쓰기는 정말 장편에 창작력을 다 뺏긴 건지 분량이 조금도 늘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 선택을 했었나 보다.
시험 기간과 비슷했다. 시험 기간에도 공부 빼고는 다 재밌게 느껴진다. 평소 그렇게 하기 싫고 귀찮던 방 청소도 시험 기간에는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청소하고 있다. 온갖 물건들 다 뒤집어엎고 꺼냈다가 다시 정리하고. 청소만 2시간이 넘게 걸린다. 지금은 청소가 아닌 재테크였다. 흔히 말하는 유튜브의 알 수 없는 알고리즘에 이끌려서 재테크 유튜브 영상을 하나 보게 됐다. 0원부터 시작해서 1억 원 만들기. 짠 테크. 이런 영상들을 보고 있자니 나도 재테크가 하고 싶어졌다. 모아 둔 돈으로 하루하루 까먹어가며 위태롭게 사는 삶 말고, 노동 후 정당한 대가를 받아서 저축하고 모아 보는 그런 삶이 다시 그리워졌다. 그렇게 입사는 이제 내 영역이 아니다. 나는 회사와 맞지 않다. 백수 생활 최고! 를 외치던 내가 재테크가 하고 싶어서 입사를 해야 하나 고민하게 됐다.
틈만 나면 구인구직 사이트에 들어가서 기업들의 동태를 살폈다. 어떤 기업이 채용 중인지 확인했다. 어떤 능력을 살려서 다시 취업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전공을 살리는 업무를 해야 할지, 아니면 지금 하고 싶은 글 쓰는 일을 해야 할지. 기업 공고 창만 10개씩 띄워두고 고민했다. 그러다 마감이 하루 남은 공고를 보게 됐다. 내 전공을 살린 것도 아니고 글쓰기도 아닌, 학교 다닐 때 따둔 자격증에 맞춘 일이었다. 홈페이지 채용으로 바로 지원이 불가능한 곳이었다. 홈페이지에 들어갔고, 자소서 항목이 몇 개 있었다.
몇 가지 항목이 있었지만 어렵지 않게 느껴졌다. 무슨 자신감인지 모를 근거 없는 자신감이 솟아났다. 단편 소설 쓸 때는 움직이지도 않던 손이 저절로 움직였다. 후루룩 써 내려갔다. 근래 들어서 이렇게 글이 잘 써진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기분 좋게 써졌다. 다 쓰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빨리 쓴 자소서를 빨리 제출했다. 그리고 잊고 지냈다. 언제 서류 합격 발표날 인지도 모르고 그냥 제출만 했다.
한가롭게 언니와 시장에서 장을 보고 집으로 오는 길. 문자가 왔다. [서류 전형 합격 축하합니다.] 엥? 이게 뭐야. 눈을 의심했다. 자격증이 한몫 한 걸 알지만, 후루룩 막힘없이 써지던 자소서가 생각나 괜히 자소서 잘 써서 뽑힌 건가. 기분이 좋았다. 필기시험은 다음 주 주말. 기분 좋은 것과 별개로 당장 필기시험 준비를 하게 돼서 바빠졌다. 책이 있는지 없는지, 뭘 공부해야 하는지 급하게 알아봤다.
아직 필기도 안 봤고, 필기 붙어도 면접이 남아있지만 괜히 김칫국을 마시며 머리로 행복 회로를 매일매일 돌리고 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이 글 쓰는 게 아니었나? 글 쓰기 왜 시작한 거지? 전업 작가를 꿈꾸지 않았나. 하는 혼란스럽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 고민들은 미뤄뒀다. 일단 잡혀 있는 시험부터 끝내고 생각하기로 했다. 요즘도 시험공부하느라 다시 도서관을 다니고 있다.
나 다시 취업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