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함 혹은 순수

-에곤 실레의 ‘꽈리 열매가 있는 자화상'

by 김혜진

우리는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한 사람의 성격을 유추해 본다. 곱게 쓴 필체가 깃든 메모에서 그의 진중함과 교양을 상상하고, 풍부한 저음을 전해주는 전화기의 목소리로 그의 인격을 생각하며, 하이톤의 응대에는 그가 주지도 않은 짜증을 받아낸다. 무심코 보게 된 모습으로 나는 왜곡하고 재창조하는 작업을 반복하며 타인을 이해하려 한다.


사람들의 왜곡된 시선 속에서 평생을 살다 간 한 사람이 있다. 기존의 화단에서는 볼 수 없었던 스타일의 그림이다. 왜곡된 시점이 빚어내는 뒤틀리고 불완전한 형체들, 과장되고 약간은 기괴한 포즈들. 거친 듯 정성스럽게 메워나간 색채에는 불청객 같은 색들의 어울림으로 알 수 없는 슬픔이 묻어 나오곤 한다. 그는 '에곤 실레' 이다.


희고 밝지만, 가라앉은 배경 왼쪽에는 붉은 꽈리 열매 4개와 시든 잎 4개가 보인다. 그는 고개를 왼쪽으로 틀고 팔짱을 낀 듯한 자세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검은 옷에 냉소적인 입매와 달리 눈은 너무 맑다. 말없이 바라보는 모습은 오히려 관람객인 나를 궁금해하며 묻고 싶은 것이 많다는 표정이다. 나는 단숨에 그의 앞에 붙들린다.


드디어 실물영접을 했다. 올 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있었던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에서였다. 클림트와 같은 그 시대의 귀한 그림들이 많았지만, 나는 에곤 실레의 ‘꽈리 열매가 있는 자화상’ 한편으로 다 퉁 칠 수 있었다. 역시 그 그림 앞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서 붐볐다. 하지만 나는 끈질기게 오랫동안 중앙을 차지하고 바라보았다. 그의 검푸른 눈빛과 오래도록 대화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악마가 너를 내 수업에 들어오게 하였구나!’라는 호통을 들으며 수업에서 쫓겨난 실레. 그는 기존 화단이 원하는 빈 스타일의 세련되고 우아한 그림을 그리고 싶지 않았다. 실레는 자신의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자신 속에서 나가고 싶어 하는 이미지들을 화폭에 옮기고 싶었던 것이다. 다른 사람의 이해나 동의를 구하기 전에 자신이 허락하는 그림 말이다. 그 댓가는 궁핍과 고통이었으며 고달픈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무엇이 그를 자신이 원하는 방식의 삶으로 걸어 들어가게 했을까? 큰 눈은 대답을 주기보다 ‘네가 잘 생각해 봐.’라는 표정이다. 그리고 오히려 자신에게 말해 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거울을 보듯 그의 시선을 나의 눈에 옮긴다. 그리고 ‘너는 네가 원하는 방식으로 걸어가고 있니?’라고 물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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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말할 때 ‘별나다’라는 표현이 있다. 독특한 성격이나 말투 또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조심스럽지만 쓰게 되는 표현이다. 나는 그런 표현을 종종 들으며 살았다. 내 생각을 조금 고집스럽게 밀고 나가거나 융통성 없이 행동할 때다. 타인의 이해는 필요하지 않다고 대담하게 말하고,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지만 속은 쪼글쪼글 구겨져 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나는 실레의 눈망울을 보며 말하고 싶다. ‘꾸며서 그럴듯하게 보이고 싶진 않아.’라고 말이다. 그때 그는 이마에 순수한 표정을 올리며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해 준다.


사람들에게 이해는 받지 못했지만, 인간에 대한 사랑과 관심은 많았던 실레. 외면하고 싶지만 의식하게 되는 자신의 이중적 감정을 화폭에 고스란히 옮겨 놓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꽈리 열매가 있는 자화상’에는 그의 그런 이중적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화단의 이단아인 자신을 온전히 이해하고 스스로 품어주고 있는 모습이다. 크고 맑은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관객인 나를 바라보아 주고 있었다.


나도 실레의 자화상처럼 나를 바라본다. 약간 고개를 돌리고 한쪽 어깨를 올려 본다. 내 뒤에도 자화상의 붉은 꽈리 열매 같은 감정이 몽글하게 피어오르지 않을까? 재지 않고, 따지지 않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세상을 바라보는 순간이 있다면 그의 표정을 닮아 있지 않을까? 그렇게 실레처럼 씩씩하게 자신이 원하는 길로 걸어 들어가다가 혼자 있는 타인의 손을 보게 된다면 잡아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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