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가 붐이 일면서 주위에 많이 생겨났을 때다. 신문이나 방송에서는 자조 섞인 보도들이 많이 있었다. 식사 값보다 더 비싼 커피가 말이 되냐는 것이다. 그땐 그 의견에 적극 찬성하던, 지금도 같이 살고 있는 나의 짝에게 나는 말한다.
“내가 카페에 가는 것은 커피 한잔을 위해서가 아니라 공간을 소비하러 가는 거야.”
그건 절대 겉멋 든 여자로만 치부하기엔 아쉬운 많은 감정들이 피어오르다 사라진다.
좌석 회전을 위해서 스타벅스처럼 불편하고 딱딱한 의자가 놓인 카페도 있다. 하지만 골목을 걷다가 만나는, 이름도 예쁘고 출입문부터 감성 가득한 카페를 만나면 오래된 친구를 만난 기분이다. 주인의 취향에 따라 꾸려진 인테리어는 커피 향을 더 풍부하게 한다. 푹신한 소파에 앉아 책을 읽거나 좋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으면 설거지와 빨랫감이 쌓인 집은 잠시 저만치 물러난다.
혹시 기억할지 모르겠다. 카페 이전에 우리나라엔 ‘다방’이 있었다. 경양식을 팔던 레스토랑에서도 커피를 마실 수 있었지만, 오로지 커피나 차에 집중하던 장소는 다방이었다. 물론 아저씨와 레지 아가씨가 있는 곳 말고 특화된 다방이 많았던 기억이 난다. 클래식 음악다방, 쎄시봉과 같이 공연이 가능한 무대가 있는 다방, 부스 안에 DJ가 곡 신청을 받던 음악다방도 있었다. 이런 말을 하면 우리 아이들은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주인공을 상상하며 듣는다. 분명히 나는 드라마 출연자들과 비슷한 모습으로 그 시절을 지났다.
지금처럼 음향이 좋은 기기를 집안에 두고 사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담벼락을 지나면 개 짖는 소리가 들리거나 라디오의 유행가 찢어지는 소리가 대부분이다. 혹시나 성능 좋은 전축이 누군가의 집에 들어오면 그곳은 그 시대 10대들의 아지트가 된다. 검은색 음반에 핀을 놓으면 흘러나오는 팝송 곡들은 우리들을 딴 세상으로 데려간다. 그런데 조금 크게 틀어놓다가 ‘뽕짝’을 좋아하시는 어른들에게 시끄럽다고 잔소리를 들으며 쫓겨나곤 했다.
대학 시절, 음악다방에 드나들며 친했던 친구가 세 명 있었다. 근데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모두 실연의 아픔을 겪고 있었다. 멋진 청년 무역상에게 마음을 빼앗겼는데 그 멋진 청년은 항상 동생이라고 생각한단다. 나는 선배가 분명 나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 아무 말이 없어 애가 타고 있었다. 또 한 친구는 자기는 과 동기와 사귀는 줄 알고 있었는데 사랑하는 사람이라며 여자 친구를 인사시켜 주더란다. 세상은 슬픈 일이 연락도 없이 찾아온다.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울려고 만났다.
독일 락밴드 스콜피언스의 ‘Still Loving You’는 우리의 위로 곡이었다. 어둑한 음악다방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한 잔의 차와 함께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한쪽에는 담배를 문 사람도 있었고, 고개를 젖히고 흘러나오는 곡에 작은 몸짓으로 장단을 맞추기도 한다. 그리고 유리 부스 안의 DJ는 희고 세련된 얼굴을 한 채 느끼한 말투로 멘트를 친다. 우리는 그 느끼함조차도 각자의 슬픔으로 의미를 부여한 채 스스로 감동한다.
Still Loving You 기타 소리가 울려 퍼지면 어두운 공간은 별빛을 품은 우주가 된다. ‘time~~~ it needs time~~~’ 가사가 시작되면 우리는 모두 자기 무릎 위에 얼굴을 묻는다. 가사는 당신의 사랑을 되찾기 위해 내가 기다리겠다는 내용이다.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 셋은 딱히 실연을 당한 게 아니다. 착각일 가능성이 더 크다. 하지만 굳이 진실을 알고 싶지는 않다. 노래 한 곡에 온 마음을 쓸어 담았었고, 어둑한 음악다방은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는 훌륭한 참호가 되어 주었다. 아직도 우연히 이 곡이 들리면, 나는 잠시 밀려오는 감정에 모든 것을 멈춘다.
그 시절, 음악을 사랑했는지 사람을 사랑했는지 음악이 흐르는 공간을 사랑했는지 기억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살면서 쌓아온 여러 감정 중에 웃으면서 되돌아볼 수 있는 슬픈 장면이라는 것이다. 방송이 끝났는데도 전원을 끄지 않아 지지직거리는 흑백 TV의 화면처럼 그 순간은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놓아 버리지 않은 어느 감정선 끝엔 아직도 선명한 Still Loving You가 흘러나오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