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 <철도원 삼대> p403~p432, 13
“지상에서 해고 반대를 외치며 싸우는 상이에 삼 년의 무심한 세월이 흘러갔고 노조 지회는 회사가 일방적으로 통보한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이해관계가 엇갈리면서 분열되었다. 어용노조가 탄생했고 해고는 정당화되었다. 그는 아직 동이 틀 징조도 보이지 않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봄이 왔다고는 하지만 지상에서도 그랬듯이 꽃샘추위는 얄밉게 버티며 물러가지 않았다. 봄이 왔건만 봄 같지 않다는 옛말은 계절 이야기가 아나라 자기네 같은 노동자의 현재를 말하는 것만 같았다.”(p402)
*****부당해고에 대항하여 굴뚝에 올라온 지 삼백 일째가 되는 이진오. 하늘이 맞닿아 있는 이곳은 계절도 더디 간다. ‘동이 틀 징조’도 보이지 않는 하늘을 보며 자신의 처지를 생각해 본다. 굴뚝 아래 세상은 빠르게 변화해 가고 발전해 간다. 그 변화 속에 묻혀가고 있을까? 결국 힘없는 사람의 약한 숨소리로 치부되고 말 것일까? 모두 다 같이 잘 살 수는 없더라도 최소한 억울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까? 이른 아침의 차가운 공기는 그의 폐부를 지나간다. 여전히 그는 춥고 떨리고 힘들다.
“이름도 없고 가난하고 힘도 없는 사람들이 저희가 겪은 억울한 일을 세상 사람들과 공유할 길은 험한 상황을 버텨내는 길고 긴 과정을 보여주는 수밖에 없었다. 온 세상은 우리의 편이 아니며, 겨우 한 발짝씩 아주 느리게 변할 뿐이라는 것을 누구나 잘 알게 되었다. 그는 가만히 불러 본다. 영숙이 누나.”(p408)
“그들의 실직 굶주림 가난 야근 피로 질병 따위의 자세한 고통들은 간단하게 개인 사정으로 지워져 버렸고 혁명 투쟁 평양 김일성 간첩 같은 엉뚱한 단어들로 조서가 채워졌다. 수사관들도 그들의 파업이나 목표가 좀 더 나은 임금과 노동환경을 요구하는 일이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지만, 대공 문제로 끌고 들어가는 것이 오랜 수사기법이라고 말했다.(중략) /해고당했던 날이 생각나네. 갑자기 세상에서 쫓겨난 거 같더라구. 쓸모 없다구 버려진 거잖아./ 그래 폐기 처분된 데다 수배자라는 사회적 죄까지 짊어지게 된 거지. 제일 힘든 건 외로움이야.”(pp411~412)
*****이진오는 신금할머니 페트병에 기대어 있는 페트병에서 영숙이 누나 이름을 본다. 그들보다 몇 년 전에 조선소의 크레인에 올라간 여성 노동자다. 기득권에 불리한 목소리는 반국가적 간첩 혐의가 되던 시절. 그들은 일제 고문 형사에게서 전해 내려온 방식대로 고문을 당하며 스스로 잠적하거나 사회에서 멀어졌다. 사회에서 품지 못하도록 모든 제도적 장치가 되어 있었다. 기대어 볼까 하는 마음에 찾아간 고향 오빠도 찾아온 누이를 조심스러워하고, 배가 불러 노조활동이나 한다며 친한 언니에게는 한 밤중에 내쫓긴다. 결국 가족에게도 함께 일했던 동료에게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람들이 된다. 그들은 단지 부당함을 호소하며 조금 더 나은 임금과 환경이 필요하다고 말했을 뿐이다. 사회적 냉대와 함께 찾아오는 지독한 외로움. 하늘 아래 나만 버려진 것 같은 심정 속에서도 그들은 아주 늦게 트는 아침 동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지금 정당한 싸움을 하고 있다. 내가 이 사회를 해롭게 하거나 누구의 신세를 지겠다는 게 아니다. 그는 다시 마음을 가다듬어 가족들에게 안부를 전하고 해고된 동료들의 일상에 대하여 말하기 시작했다. 임금을 받지 못하고 수년 동안 버텨온 그들의 나날은 마치 가뭄 속의 나무들처럼 서서히 메말라가고 나뭇잎에서 가지와 뿌리에 이르기까지 병들어가는 중이었다.”(p432)
*****이진오는 굴뚝에 올라온 지 삼백일을 기념하는 영상을 찍는다. 그 와중에도 사측 대표가 그 영상을 바라보아 주기를 바라는 지도 모른다. 굴뚝 아래 자신이 없는 지상에서는 격려 구호와 함성이 깔리고 있었다. 배가 고픈 영숙 모녀는 걷이가 끝난 남의 고구마밭을 파헤쳐 남은 고구마를 담았었다. 하지만 그것마저 주인에게 빼앗기며 울부짖는 ‘같이 좀 살자.’의 외침이 저 구호가 되어 있는 줄도 모른다. 진오는 하늘 아래 외롭게 앉아 자신의 정당함을 다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