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라지는 조선 철도와 창씨개명

황석영 <철도원 삼대> p433~p469, 14

by 김혜진

“전쟁이 터지고 나서 새로이 부산-북경 사이를 서른여덟 시간 사십오 분에 주파하는 직통 급행열차가 운행되었다. 일본의 철도 당국이 이처럼 열차의 속력 증가에 매진했던 것은 일본 조선 만주 중국의 시간적 거리를 최대한 좁힘으로써 조선과 중국 대륙을 일본에 강고하게 편입시키려는 목적이었다,”(p434)


*****일본의 야욕이 뻗칠수록 조선 땅의 철도 속도도 빨라졌다. 그들은 전쟁물자의 수송을 위해 선로와 기관차 개량에도 힘을 기울였다.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일본인 기관수가 징집되면서 그동안 기회가 없었던 조선이 기관수가 열차의 운행을 맡는다. 일철도 부산에서 만주 신경까지의 기관수로 발령을 받았다. 하지만 빨라지는 열차의 속도와 더불어 조선 백성의 생활은 피폐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게 조선은 내선일체의 기치 속에 일본제국주의화되어야 했다.




“그녀는 이웃에 묻고 공책에 적어가며 찬물에 담가 피를 빼고 된장 풀어 생강 소주 양파 차조기 넣고 고기 삶는 것부터 탕과 수육, 두루치기를 차례로 구분하여 만드는 데에 이르기까지 처음부터 성공적으로 해냈다. 그리하여 신금이는 능숙해진 보신탕을 만드는 솜씨로 시아버지 이백만, 이일철 이이철 형제, 전쟁터의 지옥을 헤치고 살아 돌아온 아들 이지산과 이진오에 이르기까지 대대로 이씨네 집안 사내들을 먹여 살려냈다.”(p439)


*****옥살이를 하고 나온 시동생 이철을 위해 시아버지 이백만이 사 온 보신탕 거리를 요리하기 시작한다. 아무리 씩씩한 여인네 신금이라 할지라도 개고기를 요리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그녀는 배워가며 이씨네 남자들을 먹이기 위해 보신탕을 끓인다. 그리고 손자인 이진오까지 먹여내었다. 그것을 이진오는 기억하고 있었고 굴뚝까지 찾아와 다독여 주는 신금할머니는 고향 그 자체가 된다. 엄마의 손, 할머니의 손은 우리 역사 반을 먹여 살린 손들이다.



“관사에 입주하자마자 거주지의 조선인 반장을 통해 자진해서 개명하도록 하였다. 그들 가족의 이 씨 성은 리노우에로 바뀌었고 이름은 이치테쓰가 되었다. 아버지의 이름도 우스꽝스럽게 리노우에 하쿠만이 되었고 지산이는 이케야마가 되었다. 신금이는 남편이 성인 리노우에를 따르고 이름은 원래 이름의 뜻을 따라 부르기가 조금 낫다는 키누로 정하였다.”(p450~451)


****기관수가 된 일철의 가족은 철도관사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미루던 창씨개명도 피할 수가 없었다. 일철은 가족을 위해 충실한 황국신민이 되어야 했다. 이 씨가 리노우에가 되었다. 하지만 그의 충성은 이름만 바꾼 겉모습일 뿐이다. 삶의 댓가는 늘 개인의 한계치를 넘을 때가 많다. 그것을 감수하며 살아가는 시간이 역사가 된다. 일철 가족의 창씨개명은 무작정 지탄을 받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바쁜 기관수의 임무를 말없이 충실히 해내고 있는 일철이지만, 그가 조직 활동을 하는 동생을 생각하는 마음은 또 다른 것이다.




“/형수님과 형에게, 식구들 모두에게 제가 폐를 끼치고 있다는 건, 저를 아는 모든 사람들도 알구 있어요. 그래서 일철이 형이 특수한 직업을 갖고 있고 내가 그 아우라는 것도 다 알고 있지요. 평생 한번 부탁을 드리는 것입니다./ 어떤 부탁인데요?/ 신의주까지 가서 누군가를 안전하게 데려오는 일입니다./ 신금이는 대번에 두 눈이 젖어버렸다. /그런 위험한 일에 지산이 아부지를 이용해서는 안 돼요!/”(p455)

“당신이 미안할 게 뭐요? 내 아우인데 녀석이 집안의 골칫거리지만, 어디 가서 무슨 도적질을 하는 것두 아니오. 목숨 걸고 독립운동을 하자는데 우리만 편히 살 수 있나. 두쇠가 가자는 날짜와 내가 근무 들어가는 날짜가 맞지 않으면 하루 이틀 당기거나 늦출 수 있으니 별문제는 없을 거요.”(p469)


****신금은 인천으로 잠입해 활동을 하게 된 시동생 일철의 부탁을 받는다. 하지만 신금의 첫마디는 ‘안 돼요!’이다. 신금도 결혼 전 활동하던 사람이었고, 이철의 상황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그녀는 소스라치듯, 그를 지키듯 거절의 말을 먼저 한다. 그건 일철이 집안의 목숨줄을 쥐고 있어서가 아니다. 차가운 형무소로 자신을 찾아온 일철을 보고 단번에 자신이 지켜 주어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살면서 그 생각은 변함이 없었기에 이씨네 사람들을 먹이고 입히는데 애쓴 것이다.

신금의 통해 이철의 부탁을 들은 일철은 거절하지 않는다. 이철이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기에 위험하지만 자신의 위치에서 해 줄 수 있다면 기꺼이 하려고 생각한다. 조선총독부의 녹을 먹고 창씨개명을 했지만 그의 마음은 빼앗긴 나라와 동생에 대한 빚진 마음이 가득해 보인다. 험지에서 목숨을 건 동생이 있는데 ‘우리만 편히 살 수 있나’라고 생각한다. 가족을 넘어서 아니라 조선 백성의 혼은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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