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 <철도원 삼대> p470~p512, 15-2
“박헌영은 그 후 행방이 될 때까지 김성삼이라는 가명으로 벽돌공장에 인부로 숨어 있었고 이금순이 유일한 외부와의 레포 역을 맡았다. 이것이 일제강점기 국내에서 벌어진 사회주의 조직의 마지막 운동이었다. 경성콤이 와해된 1941년부터 해방이 될 때까지 국내 운동은 물론 해외 조선인의 항일 무장투쟁도 퇴조기에 접어들었다. 일본은 중국과의 전쟁에 연이어 진주만 공격으로 미국과 태평양 전쟁을 치르게 되었다. 활동가들은 서로의 연결을 최소화하고 각자도생 하면서 파쇼 일제의 패망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실감했다.”(p500)
*****일제의 국내 침탈은 극을 달리고 있었다. 패망이 눈에 보이는 마지막 발악이다. 그런데 그 발악의 최선에는 조선 징용군이 배치되어 있었다. 그 유명한 가미가제 전투기 조종사의 대부분도 어린 조선인 청년들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국내외 활동가들은 어느 때 보다도 숨죽인 채 움직였다. 정말 일제의 끝이 오는 것인지 아니면 누구의 말대로 독립은 올리 없다고 생각했든지 전세는 조선의 땅을 더욱 어둡고 황폐한 시간으로 만들었다.
“이지산은 샛말로 이사 갔을 때가 열 살이었고, 예전 보통학교가 소학교에서 다시 황국신민을 줄인 국민학교가 되어서 삼 학년이었다. 그는 철도관사에 살던 시절부터 아버지가 기관수라는 것이 은근히 자랑스러웠다. 학교에 가면 영단에 사는 노동자의 아이들은 이지산 아버지가 특급열차의 기관수라고 부러워했고, 일본인 선생들도 그게 사실이냐고 되묻기까지 했던 것이다. 언젠가부터 이지산은 자기도 어른이 되면 기관수가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할아버지 이백만은 함석판으로 장난감 기관차를 만들어 손자에게 주었다.”(p503)
****엄혹한 세월에도 꿈은 언 땅에서 돋는 보리싹처럼 돋아난다. 당대의 신문물 중에서도 거대하며 직관적인 기차를 모는 기관수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일철의 아들 이지산은 기관수인 아버지가 한없이 자랑스러웠고 철도 가족의 혜택을 누리며 만주 신경까지 가게 된다. 철도는 이일철의 집과는 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그의 가족을 먹여 살렸고 숨겨주었으며, 오히려 쓰러져 있는 나라의 땅을 누비며 망국의 비참함을 더 절실히 느끼게 된다.
“/사람이 살다 보면 좋은 시절두 오구 나쁜 시절이 뒤를 잇기 마련이란다. 그렇게 잘살더니 해방이 되면서 길이 끊기구 말았지 뭐냐, 나중에 겪을 고생이 있으니까 먼저 잘살게 해주는 것 같지 않니?/ 만주에서 귀국한 사람들의 입소문에 의하면 일본 관동군이 패전하자마자 만주인들이 일본인은 물론이고 조선인들의 재산을 빼앗기거나 수많은 인명을 살해했으며 교통편도 끊겼다고 하였다. 신금이의 짐작으로는 고모부 강 씨가 먼저 당했거나 두 아들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것이었다.”(p512)
*****지산이가 엄마 신금이와 찾아간 만주의 막음이 고모는 조선에서와는 딴 세상에서 살고 있었다. 빼앗긴 땅을 뒤로하고 만주로 찾아간 조선인들은 일제가 패망하자 다시 만주인들에게 빼앗기고 살해당하였다. 독립된 조국으로 오는 길은 막히고 그들의 소식은 끊어진다. 세상사 누구에게나 공평하다는 신금이의 말처럼 과연 공평한 게 맞을까 싶기도 하다. 빼앗긴 나라의 백성에게 쉽게 봄은 오지 않았다. 독립된 땅에서도, 살길을 찾아 떠났던 이역의 땅에서도 조선 땅의 봄은 녹록지 않았다. 겨우 추위를 뚫고 돋아도 발밑에 밟혀야 하는 이월의 들뜬 보리싹처럼. 바람의 한기는 조선 땅을 다시 훑고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