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 <철도원 삼대> p513~p544, 16
“일왕 히로히토의 공개방송 내용에는 침략에 대한 반성이며 패전에 대한 항복의 의미는 한 글자도 들어 있지 않았다. 심지어 미국 영국 등으로부터 동아시아를 안정시키기 위하여 불가피한 일이었으며 주권 배격과 침략이 그의 뜻이 아니라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그 내용은 연합군 수뇌의 포츠담선언을 수락한다는 내용으로 얼버무려져 있었다. 해방된 조선의 식자층과 당시의 어느 논객은 뒤에 이렇게 회고했다. / 조선에서 해방은 1945년 8월 16일 하루뿐이었다./ 히로히토가 8월 15일 정오에 라디오를 통해 ‘대동아전쟁종결조서’라는 것을 읽어 내려간 육성 녹음을 방송했지만, 그것은 명백히 항복 방송이 아니라 종전 방송이었다.”(p520)
*****공장마다 나오는 일본의 패배 소식에 누군가 기계를 멈추고 만세를 불렀다. ‘대한독립 만세!’라고. 그리고 사람들은 기쁨에 겨워 쏟아져 나와 거리를 메웠다. 오래전부터 교과서에서 보아오던 빛바랜 흑백사진과 영상이 책을 갈피를 뚫고 나와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하지만 저자 황석영은 일본 왕 히로히토의 방송내용을 그대로 한글로 옮겨 적으며 말했다. 이것은 항복 방송이 아니라 종전 방송일 뿐임을 지적하고 있다. 침략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안정을 위한 불가피한 일이었다고 주장하는 일왕의 궤변은 세계를 향하고 우리나라가 겪었던 고통은 그 이면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어째서 이일철 동무는 노련한 활동가가 될 수 없나요?/ 저는 차라리 이곳 영공에 들어가 일했으면 합니다. 제가 태어나 자란 곳이고 무엇보다 부친이 평생을 보낸 직장입니다. 영등포에 사는 이는 누구든 제가 거의 알 만한 사람들입니다. 저는 여기서 노조 일을 해 보고 싶습니다./ 김근식이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바로 제가 이 동무에게 부탁하려던 일입니다. 영등포의 산별노조를 이끌어주셨으면 합니다./ 신금이는 해방되고 나서 남편이 급속하게 변해가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p529)
****못 다한 뜻을 가지고 옥사한 동생을 위한 생각이었을까? 아니면 그동안 자신의 속에 꽁꽁 숨겨두었던 진정한 자아일까? 해방된 조국에서 일철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고 있었다. 조선인 기관수는 더욱 안정된 기득권을 누릴 수 있는 좋은 직업이었다. 하지만 그는 철도국의 노조에 참여해 달라는 부탁에 일철은 영등포의 공장에서 산별 노조 활동을 원하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가정을 잊을 정도로 노조의 일에 매달린다.
“그때 마쓰다는 낮게 웃음소리를 냈다. /아마 그렇게 되지는 않을걸. 우리는 패했지만 조선이 이긴 건 아니잖소. 이제 미군이 들어오면 우리의 치안 행정 체계를 고스란히 받아들일 거요./ 마쓰다는 손가락을 위로 세우면서 말했다. /저쪽에 들어오는 건 공산주의 소련 아닌가, 여긴 자본주의 미국이 들어오고 미군은 당신 같은 유능한 사람을 원하게 될 거요. 우리에게 잘했으니 그들도 자기네에게 잘해줄 사람을 찾는 게 당연한 일 아닌가. 더구나 당신은 공산주의자를 때려잡는 기술자란 말이지./ 최달영은 눈앞이 번쩍할 정도로 어떤 깨달음이 지나가는 걸 느꼈다.”(p529)
*****해방과 동시에 처갓 집에 은거했던 야마시타 최달영은 서서히 자신의 날개를 다시 펼 곳이 그대로 있음을 알았다. 상해의 임시정부의 기조나 인물을 거부했던 미군정은 일본이 물러난 자리에 일제의 앞잡이들로 채웠다. 그들은 ‘당신 같은 유능한 사람’이 되어서 다시 민족의 손발을 묶는 일을 더 당당히 하게 되었다. 그들에게 민족은 없었고 반공을 필요로 하는 미군정을 위해 일할 뿐이었다. 해방이 딱 ‘8월 16일까지’ 였다는 말이 틀리지 않은 이유다. 청산되지 않은 일제의 잔재는 지금도 우리가 쳐다볼 수도 없는 기득권이 되어가고 있었다.
“인파에 밀려 공장 안으로 들어갔는데 창고들마다 모두 문이 활짝 열어젖혀져 있고 밀가루 더미와 곡물의 언덕은 훨씬 줄어들어 있었다. 그때 갑자기 총소리기가 들리기 시작하며 어둠 속에서 전조등을 켠 트럭들이 몰려 들어오는 게 보였다. 신금이네 식구들은 우선 손에 잡히는 대로 밀가루 포대를 이백만이 끌고 온 자전거 화물대에 실었고, 양곡을 함지와 홑이불에 가득 채워 신금이가 머리에 이었으며, 쌀자루 두 개는 지산이가 짊어졌다. 트럭에서 내린 미군과 경찰들이 공포를 쏘며 창고 앞으로 달려왔다. 그들은 아슬아슬하게 공장 정문을 빠져나와 철로를 건넜다.”(p544)
*****남북이 분단되고 북한에 많던 공장에서의 공급이 끊어지면서 해방된 남한 사회는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도매물가는 해방 전보다 거의 삼십 배 이상 올랐으며, 미군정의 마구 발행한 통화량으로 일반 서민의 생활은 도탄에 빠졌다. 그것은 신금이의 가족들도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먹고사는 일이 고통에 가까웠다. 그때 주안댁이 다시 신금이에게 나타났다. 자고 있는 신금이를 죽은 주안댁은 깨웠다. 그리고 일제가 남기고 간 마루보시 맥주 공장으로 가게 했다. 공장은 불타고 있었고, 사람들은 아직 타지 않은 공장의 창고에서 쌀포대와 밀가루 포대를 끌어냈다. 총소리가 울린다. 그것은 미군정이 보기에 약탈이었다. 하지만 진영 논리는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굶주린 일반 서민에게는 살려는 몸짓일 뿐이다. 마루보시 공장의 화재는 우연일까, 아니면 그렇게라도 굶주린 식구를 먹여 살리려는 죽은 주안댁의 안타까움일까. 그 시간을 통과하고 있는 신금은 말한다.
“한국은 하도 우여곡절이 많아서 여기 일 년이 다른 나라의 십 년이라구 하지 않더냐. 여기 십 년은 바깥의 백 년 세월과도 같을 게다. 그러니 우리는 모두 들 수백 살씩 먹은 게지.”(p537)
흔히 ‘격동의 시기’라고 한다. 우리가 괜히 다른 나라보다 빨리 일어선 게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렇게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시간 속으로 떠밀려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것도 맨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