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한 박자씩 늦었다. 어릴 적에 박자를 맞춘다는 것은 나에게 참 어려운 일이었다. 운동회 단체 무용 연습에도 남들이 손을 올리는 것을 보고서야 손을 올렸다. 가창 시험 시간에는 시작을 놓쳐 첫 음을 뭉개고 들어가다 혼나곤 했었다. 그즈음 나에게 가장 부러운 아이는 공부 잘하는 아이가 아니라 빠릿빠릿한 아이였다. 뭘 하든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이 정리되어야 움직였었다. 살면서 많이 고쳐지긴 했지만 타고난 천성이니 지금도 별다르진 않다.
세상도 조금 느리게 사는 편이다. 남들 다하는 것도 한참을 살펴보고 지켜보다가 마음이 동하면 그제야 시작한다. 처음 ‘문자’라는 휴대폰 기능에 적응하는 것도 시간이 걸렸었다. 기능 조작이 문제가 아니었다. 다행히 기능이나 기계조작은 느린 편이 아니다. 마음이 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바로 전화를 할 것이지 왜 문장을 보내는지 답답했었다. 그리고 받은 문장을 한참을 곱씹어야 했다. 더 문제는 내가 문자를 보낼 때다. 그 한두 문장을 쓰기 위해 나는 십 분 이상 아니, 종일을 생각해야 하는 날도 있었다.
카톡도 참 늦게 동참했었다. 특히 ‘단톡방’은 나에게 경악이었다. 생각을 왜 다수와 공유해야 하는지도 의문이 들었고,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나를 단톡방에 초대하는 것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물론 지금은 문자나 카톡 대신 전화부터 하는 것에 오히려 더 익숙하지 않다. 요즘에는 모르는 전화는 받지 않는다. 문자나 톡이 오면 그제야 연락을 한다. 하지만 이제는 나도 고마운 사람이 있으면 카톡으로 쿠폰을 날리기도 하고, 부조금 계좌이체에도 익숙해졌다.
느리기도 하지만 아마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 탓이리라. 어디에서든 내가 공개되는 것은 익숙지 않다. 그리고 남의 생활도 궁금하지 않다. 당연히 블로그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계정은 없다. 그게 왜 필요한지도 모른다. 그러니 요즘 디지털 세상은 내가 따라가기가 버거운 면이 많다. 전자책보다 종이책이 천만 배 더 좋고, 공책에 쓰는 걸 좋아해 필기구에 관심이 더 많은 나이다. 그렇다고 이 세상의 흐름을 등지고 살 수는 없다. 산골에 집을 짓고 사는 ‘나는 자연인이다’가 아니므로.
그림책 만들기 첫 모임이었다. 나는 색연필로 그림을 그리고 오려내어 꼴라쥬 형식으로 꾸밀 생각이어서 125색 색연필을 들고 갔다. 색연필의 부피가 꽤 되어서 큰 가방을 메고 가야 했고, 30분 정도 걸어가는 거리라 힘들어서 낑낑거렸다. 모임 장소에 도착하니 모두 아이패드를 가지고 작업을 시작했다. 나만 아날로그 색연필 작업이었다. 그래도 부럽지는 않았다. 색연필과 여러 가지 종이 재료가 주는 질감을 살리고 싶었다.
하지만 파일 작업이 필요했고 손으로 열심히 작업한 내 그림도 스캔하여 파일로 저장해야 했다. 문제는 파일 작업 후 보이는 크고 작은 결점을 리터칭 해야 하는 디지털 보완 작업이었다. 아이패드와 펜슬, 그리고 작업 프로그램이 있어야 했다. 꿋꿋하게 수작업할 거라며 큰소리치던 나는 몇 번의 모임 뒤에 결국 아이패드를 들고 앉았다.
또 한 박자 늦게 세상에 참여했다. 아무리 내가 색종이를 자르고, 색연필로 그려내어도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에 맞는 방법은 또 따로 존재했다. 나는 그것을 잘 넘나들고 싶다. 종이 꾸러미를 둘둘 말고 색연필을 깎아 가며 작업해도 그것을 더 빛나게 할 기술을 외면하고 싶지도 않다. 그래도 아직 AI 사이트에는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주위에 챗GPT가 친구보다도 재미있다며 푹 빠져 있는 분들도 있기는 하다. AI도 내가 세상을 살아가며 언젠가 건너야 할 다리인지도 모른다.
수업을 들었던 강사님이 AI그림책 공모전에서 상을 받았다고 연락이 왔다. 멋진 그림에 감탄하며 축하의 인사를 전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그래도 나는 손 그림이 더 좋아’라며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한다. 그러면서도 아이패드를 켠다. AI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는 패드 작업에 많이 익숙해지고 있다. 어쩌면 이 작업도 많이 능숙해지고 즐거워할 것 같다. 그렇게 나는 또 내딛기 힘들어하던 세상과 마음이 통하는 절친이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