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비가 오고 난 후 마당 텃밭에는 초록의 생기들로 가득하다. 풋고추, 애호박, 화단 벽돌 울타리 안에 낮게 줄지어 선 아욱, 오른쪽 구석에 봉선화 그리고 담벼락 호박잎, 아침이 일찍 오는 계절에는 사방이 채 마르지 않은 물기를 머금고 있다. 길게 늘어진 빨랫줄에는 빛바랜 플라스틱 집게 몇 개가 대롱댄다. 며칠 전 서울에서 일하는 아들의 기별을 받은 그녀는 아침부터 마음만 부지런해진다.
평상 마루가 붙어있는 아래채 문을 열고 장롱을 살펴본다. 이불을 털어서 다시 개어 넣고 베개가 숫자대로 있는지도 확인한다. 자주 내려오지 않는 아들의 방을 비질하는 그녀의 마음은 아침 제단을 준비하는 늙은 수도사 같다. 벌써 산책을 다녀와 마당을 들어서는 남편을 채근해 마당도 쓸어주고 정돈해 주기를 부탁한다. 그제야 새들이 마당을 지나며 남은 아침을 깨운다.
간소한 아침밥이다. 두 노부부의 아침상은 평생 그랬듯이 몇 가지 되지 않는 반찬과 밥이 전부다. 집에서 담근 된장에 손두부를 썰어 넣고 마당의 풋고추를 띄운 된장국, 여름이면 보리가 많이 들어간 공깃밥, 잘 익은 열무김치, 삶은 달걀 두 개가 부엌 식탁에 정갈하게 놓인다. 그들의 빈 대화를 메우는 거실의 텔레비전 뉴스 소리가 집안의 아침 시간을 함께 채운다. 가끔씩 던지는 남편의 혼잣말에 그녀도 의미 없는 대답을 한다.
아침을 물린 그녀의 손은 바빠진다. 찬장 깊숙한 곳에 넣어둔 유기농 ‘우리밀’ 밀가루를 꺼내고 커다란 양푼도 준비한다. 양푼에 밀가루, 소금, 물만 넣고 반죽을 시작한다. 국수를 만들 수 있는 찰기가 되도록 늙고 쭈글 한 그녀의 손은 반죽을 치대고 치댄다. 어느덧 희고 둥그런 반죽이 은빛 양푼 속에서 누군가의 마음이 되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뽀얗게 밀가루가 묻은 손을 들고 거실 쪽을 향해 소리친다. 남편은 식탁을 신문지로 덮고 커다란 나무 도마와 밀대를 준비해 준다. 오늘은 그녀가 좋아하는 아침드라마도 안중에 없다. 신문지와 도마 위에 하얀 밀가루를 곱게 뿌려준다. 반죽을 도마에 놓고 밀대로 밀어서 편다. 자꾸만 반죽은 얇아지고 넓게 펴진다. 무엇인가 그녀를 이끌고 있는 것 같다. 집을 떠난 지 오래된 아들이 오는 날이면 꼭 해야 할 신성한 의무 같은 것이다. 넓게 펼쳐진 반죽을 접고 접어서 곱게 칼질한다. 채반 위에 펼쳐진 국수사리는 정갈하고 가지런하다. 국수를 좋아하는 아들을 위한 엄마의 마음이다.
아들 내외가 대문을 들어선다. 그녀는 멸치로 육수를 낸 국물을 끓이고 채반에 펴둔 국수를 넣는다. 며느리가 마당에서 따온 애호박을 썰어 넣고 양념장을 만든다. 아들은 마당 텃밭의 채소에 감탄하며 풋고추를 몇 개 따내고 있다. 마당을 향해 열려 있는 부엌에서는 칼국수가 뽀얀 국물을 일으키고, 손주들은 마당을 뛰어다니느라 바쁘다. 작고 소박한 밥상이 준비되는 이 순간은 그녀를 늘 행복하게 만든다.
평상 위에 상이 차려졌다. 여섯 식구가 모인 마당에서의 점심은 더운 날 칼국수이다. 그녀의 눈은 외지에서 돌아온 아들에게로 쏠려 있다. 아들은 연신 땀을 닦아가며 먹고 있다. 원래 그랬다. 어린 시절부터 더운 여름날에도 칼국수를 해달라고 했었단다. 냉장고에서 금방 꺼낸 수박을 한 조각 물고 있으면, 한 줄기 바람이 시원하게 마당을 지난다. 그녀의 칼국수 한 그릇은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에게 기억이 되어가고 있었다.
아들은 지금도 언제나 여전히 칼국수를 좋아한다. 물론 그의 아내는 밀가루 반죽을 밀지 않는다. 길을 가다 칼국수 집을 만나면 지나치지 않고 먹는다. 입에 맞는 식당을 만나면 꼭 어릴 때부터 직접 밀어서 국수를 만들어주던 엄마를 생각한다. 그건 꼭 그의 기억만도 아니다. 우리 모두의 기억이다. 엄마로, 시어머니로, 할머니로 기억되는 그녀의 따뜻한 손길과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