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2월마다 심한 감기가 찾아옵니다.
올해도 변함이 없습니다.
매년 반복되는 고통을 주는 감기의 정체가 무엇일까?
깊게 고민 한 적이 있습니다.
과학적 근거도 없는 작은 결론을 스스로 내렸습니다.
아마도 못다 겪은 산통의 일부인 듯 합니다.
나무의 기운을 타고 한 겨울에 태어났으니, 많이 힘들었을 것입니다.
절반은 어머니께서 감수해주셨으니, 빛을 볼 수 있었을 것이고
남은 절반의 절반만 느꼈기에 건강하게 태어났으리라 믿습니다.
신의 가호로 그 나머지를 살면서 갚아야하는 운명을 지닌 겨울아이는
반 백년 동안 2월마다 감기와 함께 합니다.
벌써 3주째 앓고 있습니다.
처음 일주일은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웠고, 다음 일주일은
무기력과 체력방전으로 힘이 들었습니다.
아빠의 감기는 가슴에서 시작해서 코에서 끝이납니다.
독기가 모두 빠지지는 않았지만, 마지막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나을 것 같다는 희망이 보입니다.
작은 불씨를 키워보기 위해 산으로 갑니다.
저의 휴무일은 화요일 입니다.
무엇을 할까? 가까운 산으로 갈까? 오전내내 자고 싶은데 산에 갈 수 있을까?
내일은 세차도 해야하는데..... 여러생각들이 머릿속에서 오갑니다.
사랑하는 아들이 가족톡에 질문을 합니다.
일단 산에 가기로 했습니다.
일단 아침 늦게까지 잠을 자고 몸상태를 점검해봅니다.
가까운 산에 산책하는 정도는 괜찮겠지만, 북한산이나 도봉산을 오르내릴 수는 없을 듯 합니다.
세차를 하며 기다려야 하는 시간동안 아빠,엄마,동하,중하, 윤하는 함께 차를 나누어 먹기로 했습니다.
선약이 있는 진하는 함께 하지 못했습니다.
차를 마시며 결정했습니다.
"고봉산으로 가자!! 별이와 밤이도 데리고!!"
아빠는 지난 10년의 삶을 되돌아 봅니다. 타협과 물러섬으로 일관한 5년과
폐암수술 뒤에 숨어서 몸과 마음을 움츠린 5년의 세월이 부끄럽기만 합니다.
나이 80이 넘은 김성근 감독의 인터뷰 내용을 우연히 들었다.
" 나는 이기는 것만을 생각해요. 이겨서 돈으로 선수에게 보상해주는 것이 프로야구 감독이예요. 그래서, 리더는 모든 순간 목숨을 걸어야 해요."
한없이 작아짐을 느낍니다.
늦었지만 새로운 꿈을 향해 날개를 펼쳐봅니다.
10년 만에 일다운 일을 할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기대감 만큼 두려움도 함께 몰려옵니다.
그러나, 삶 속에는 어깨동무를 하며 밀물처럼 다가오는 고통의 시간 보다 천천히 띄엄띄엄 하나씩 다가오는 행복의 시간들이 훨씬 더 많을 것입니다. 덩어리로 다가오는 고난의 슬픔을 막아줄 행복의 조각들을 만들어 가야합니다.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무엇인가를 포기해야 할 지도 모릅니다. 한조각 한조각 맞춰진 퍼즐로 만들어진 " 행복의 방패"를 반드시 만들어 낼 것입니다.
엄마는 무거운 삶의 무게를 나누기 위해서 17년 간의 전업주부생활에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작년 4월부터 새로운 일을 시작했습니다. 각오는 했지만, 변해버린 환경과 일과 떨어져 있었던 시간과의 괴리가 몸과 마음을 지치게 합니다. 각오는 하고 시작한 일입니다. 그러나, 마음처럼 잘 안되나 봅니다. 한숨과 눈물이 많이 늘었습니다.
예전의 아빠와 엄마는 밤을 새워가며 대화를 할 정도로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점점 대화 수가 줄어가고 있습니다.
각자의 영역에서 느끼는 무게감이 입과 혀까지 무겁게 만들었습니다.
아빠는 아빠대로 엄마는 엄마대로 자신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합니다.
장난처럼 시작한 대화가 언성이 높아지는 날도 있습니다.
힘들 때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힘들게 하고, 그 사람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 못난 행동도 합니다.
그래서, 요즈음 아빠는 성당에 가서 기도를 합니다.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여유를 지니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동하는 고3이 됩니다. 마음도 급해지고 걱정도 많아집니다.
"아빠!! 산에 갔다와도 되겠지?" " 그냥 집에서 숙제할까?" "가고 싶은데...."
모든 선택의 기준이 수험생의 양심으로 부터 비롯됩니다.
어릴 때 부터 예민하고 겁이 많았습니다.
아빠를 닮아 어떤 일을 시작하거나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많이 힘들어합니다.
하지만, 따뜻한 마음과 배려심이 많아서 결국 친구들이 가장 많은 사람이 됩니다.
친구들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동하야!! 너는 주변에 사람들이 많아서 어른이 되어서도 잘 살 것 같아."
이보다 더 값진 덕담은 없을 것입니다.
아빠도 믿습니다. 동하의 내면에 깊게 자리잡은 따뜻함이 빛을 발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진하는 자립심이 강합니다.
오늘도 꿋꿋하게 친구와 스케이트를 타러 갔습니다.
고교생활을 시작하는 3월부터는 기숙사생활을 시작합니다.
외국으로 대학을 가고 외국에서 살고 싶어하는 자신의 꿈들을 조금씩 실현해 가는 모습이 대견스럽습니다.
한편으로는 "진하가 벌써 엄마 아빠의 품을 떠나는 구나!!"라는 아쉬움 생각을 들기도 합니다
중하는 독특한 대화법을 지녔습니다.
얼마전 진하와 중하와 함께 차에서 나눈 대화내용입니다
중하가 입을 내밀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아빠!! 요즈음 공부하기가 너무 싫어." "왜 해야하는 지도 잘 모르겠어"
모든 일에 진지한 진하가 말을 이어갑니다.
"나도 그랬는데 참고 하는 것이 좋아!! 나중에 후회하지말고....!!"
중하가 말을 받습니다.
"나도 잘알지 그런데, 하기 싫은 것을 어떡해 하냐고!!"
진하가 목소리를 높입니다.
"안하면 후회한다니까!! 어차피 해야한다고!!"
사랑하는 아들의 이야기는 꼭!! 끝까지 들어보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아빠가 한마디 합니다.
"중하는 어차피 할 거 잖아!!"
중하가 웃으며 말합니다.
"그렇지!! 나는 남들에게 좋게 보이고 싶은 생각이 강한 사람이니까 하게 될거야"
목청을 높혔던 진하가 "뭐야...."라고 고개를 돌립니다.
오늘도 진지한 진하를 중하가 놀려먹었습니다.
중하가 어릴 때는 아들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험한 세상을 헤쳐나갈려면 강해져야 하기에 나약한 모습을 보이면 야단을 치기 일쑤였습니다.
아빠가 많이 부족 했고 지금도 모자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많이 미안합니다.
윤하에게는 작은 소원이 있습니다. 친구들처럼 자기만의 공간을 가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윤하는 자기방을 갖지 못했습니다. 드디어 윤하의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진하가 선택한 고교입시에서 본인보다 더 열심히 합격을 기원했습니다.
그 결과 3월부터 기숙사 생활을 하는 진하 언니 덕분에 자기방이 생겼습니다.
게다가 새로운 침대와 책상까지 생겼습니다.
요즈음 우리집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윤하입니다.
하지만, 3월 1일까지는 진하와 함께 방을 사용해야 합니다.
동하가 윤하에게
"윤하야!! 진하가 빨리 기숙사에 갔으면 좋겠지?"라고 짓궃게 물어 봅니다.
윤하가 대답합니다.
" 음....2월이 28일까지 밖에 없다는 것이 정말 다행이야."
생활지능이 높은 우리 막내다운 대답입니다.
덕분에 크게 한번 웃었습니다.
별이는 7년 전에 가족이 되었습니다. 1년을 외롭게 지내다가 크리스마스날 귀여운 동생 밤이를 만났습니다.
도도하고 타협이 없는 왕자님 별이와 사람을 좋아하고 언제나 먼저 다가가 인사를 건네는 밤이는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하지만, 둘은 우리집의 행복의 바탕입니다. 건강하게 오래도록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방 안에서 늘 잠을 자는 별이와 밤이 보기가 미안했는데, 오늘 산을 함께 오르게 되어서 너무 행복합니다.
아마도 별이의 나이와 저의 나이의 위치가 비슷하겠지요.
각자 삶의 절반정도를 살았으니까요.
먼훗날 별이가 무지개 다리를 건너서 하늘의 별이 되는 그날!!
우리와 함께 했던 시간들을 즐겁고 행복했다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올 한해동안
별이와 밤이와 함께 산길을 걷는 기회를 많이 가지려고 합니다.
동진중윤에게
"행복이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아서 느끼는 것임을 꼭!! 명심하기를 바란다."
전망대에 올라서 북한산을 바라봅니다. 우측으로는 인왕산과 안산도 보입니다. 저 멀리 보이는 능선길을 함께 오르내리던 청우선배님, 조르바님, 린님, 이푸엄마님, 안녕쎄부님 그리고 환한 웃음과 넓은 마음으로 품어주시는 덤바위골선배님이 생각이 납니다. 그리운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하는 아름다운 사람들입니다.
동하, 중하, 윤하도 해맑게 웃습니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바라보는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서는 반드시 몸의 수고로움을 견디어야 함을 알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정상에서 느끼는 행복감 보다 그것을 위한 과정속에 훨씬 더 커다란 즐거움이 있음도 함께 알아가기를 바랍니다.
새로운 다짐
"가족의 행복은 지키고 가꾸는 것입니다."
오늘의 산행도 웃음이 가득 했습니다. 특히, 동하와 별이와 밤이가 함께 해 주어서 더욱 즐거웠습니다.
아빠는 걸으면서도 무거운 마음과 감기의 독성을 모두 내려놓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동하, 중하, 윤하의 웃음소리 덕분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이제 엄마를 만나러 갑니다. 산을 내려가면서 아내와 함께 했던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던 신혼 초기를 생각해봅니다. 돌이켜보니 그 때 더 많이 웃었던 것 같습니다. 젊음이라는 불꽃이 웃음과 희망을 활활 타오르게 했던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이제는 늙음이라는 넓은 온기로 마음의 크기를 키워나가야겠습니다.
스트레스와 불안감으로 대화의 시간이 점점 줄어가고 있는 마음의 겨울이 빠르게 지나가기를 바랍니다.
푸른 하늘과 울긋불긋한 꽃과 따스한 햇살 가득한 봄 날을 위해 몸과 마음을 새롭게 돌아봅니다.
밤이, 별이, 윤하, 중하, 진하, 동하 엄마, 아빠의 웃음소리가 문 밖까지 울려퍼지는 아름다운 시간들을 꼭!! 되찾아 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