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녹색당의 성장 그리고 바로사 가스전의 행방
기사요약
1. 이번 호주의 선거는 기후 위기가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2. 호주 녹색당은 호주 상원에서 기후 정책 결정의 실세가 되었다.
3. 한국 기업의 호주 석탄 및 가스투자는 어쩌면 호주 녹색당이 키를 쥐고 있다.
이번 호주 선거에서 가장 큰 쟁점은 기후위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2013년 이후부터 계속 집권하던 중도 우파 자유당은 그동안 기후 위기 대응에 실패했고, 공약에서도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미흡했다. 중도 좌파를 대변하는 노동당은 이에 비판하였고, 강력한 기후 공약을 앞세워 정권 탈환에 성공했다. 더불어 이번 선거에서 최고의 성적을 거둔 녹색당, 그리고 녹색당만큼이나 강력한 기후 공약으로 돌풍을 일으킨 청록 무소속 연합(Teal Independents)도 좋은 성적을 거뒀다. 그 결과, 노동당을 주도로 녹색당과 무소속 연합과 함께하는 적록연정이 탄생했다.
상·하원으로 나뉘어져 있는 호주 의회는 선거를 통해 하원의 다수당을 차지한 정당이 의회에 책임을 지는 행정부를 구성한다. 하원은 기본적으로 영국과 유사한 구조를 가지며 인구비례에 의해 설정된 선거구에서 선출된다. 올해는 하원 151석에 대한 선거가 이루어졌고, 노동당이 77석을 가져가며 단독정부를 구성했다. 총 76석의 상원의 경우, 미국과 같이 법률안(예산안 포함)에 대한 조언과 동의의 권한을 가진다. 최종적으로 상원에서 법안이 통과되기 위해서는 39표가 필요했으나 자유당 연립이 32석을 가져가는 동안 노동당은 26석만을 차지하게 되어 여당은 효과적인 법안 통과를 위해서 다른 정당과의 연합이 절실해졌다.
호주 녹색당, 기후 정책 결정의 실세가 되다.
노동당이 상원에서 라이벌인 자유당에 온전한 승리를 거두지 못하는 동안, 12석의 자리를 확보한 호주 녹색당은 노동당이 새로운 법안을 내놓을 때마다 가장 먼저 협상해야하는 정당으로 급부상했다. 호주에서 3번째 대도시인 멜버른을 지역구로 한 당 대표인 애덤 밴트(Adam Bandt)가 처음 2010년 총선에서 하원을 진입한 것을 시작한 이래로 10년 가까이 홀로 버티고 있었다. 이번 선거에서는 애덤 밴트는 5선에 성공했고, 하원에서 3석을 추가한 4석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며 영향력이 증가했다.
녹색당이 총 하원 4석, 상원 12석이라는 기록으로 역대 최대의 의석 수를 확보하게 된 배경은 호주인들의 기후 위기 대응에 대한 열망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지난 몇 년 간 호주는 건조한 여름에는 가뭄과 대형 산불로 인해 생태계 파괴가 심각했고, 우기인 겨울에는 큰 홍수를 연속적으로 경험했다. 의무적으로 투표를 해야 하는 호주 시민들에게 체감할 수 있는 기후재난이 고스란히 선거 결과로 이어졌다.
현 여당이 스스로 지지율을 잃은 면도 있다. 최악의 산불이 있던 2019년, 당시 여당이었던 자유당의 총수인 스콧 모리슨(Scott Morrison) 전 총리가 도심에 자욱한 연기를 뒤로 하고 하와이로 휴가를 떠나 호주 시민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겼다. 매해 겨울마다 홍수로 큰 피해를 본 브리즈번과 시드니와 같은 대도시 주변 지역의 상황은 호주인들에게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리더십의 부재를 체감할 수 있게 했다. 뿐만 아니라 자유당 의원들의 성 추문 스캔들, COVID-19 상황 속 집값 폭등과 소득격차의 심화는 자유당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녹색당은 이러한 문제를 놓치지 않았다. 기후 위기가 눈 앞에 펼쳐지고 있다는 점을 유권자들에게 호소하는 한편, 억만장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여 생활비 압박을 완화하겠다고 공약했다. 선거 이후에도 기후 행동을 이끌고,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을 지속할 것을 약속했다.
신규 석탄 및 가스 개발의 행방은 어쩌면 호주 녹색당에 달려있다.
선거 직후 노동당은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NDC(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의 상향조정으로 2005년 대비 2030년까지 28% 감축을 넘어 43% 감축을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United Nations Framework Convention on Climate Change)에 즉각 제출하여 공식적인 목표로 설정했다. 이전 정부보다는 상당히 도전적인 수치로 평가받을 수 있지만, 발표 직후 녹색당 및 청록 무소속 연합은 43%는 충분하지 않은 감축목표로 평가했다. 녹색당의 당 대표 애덤 밴트는 이어서 노동당의 43% 목표는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하여 지구 평균 온도 상승을 1.5 ℃ 미만으로 유지하는 것과 양립할 수 없으며, 1.5℃ 목표를 위해서는 75% 감축목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녹색당은 석탄과 가스에 대한 의존을 단계적으로 낮추는 것을 첫 번째 협상으로 요구했다. 녹색당에서는 새로운 석탄 및 가스 프로젝트를 금지하는 것을 요청하며 서호주의 Scarborough 가스 프로젝트와 노던 테리토리 NT(Northern Territory) 준 주의 Beetaloo 분지의 가스전 재개발 검토에 대한 중단을 요구했다.
호주 정부는 녹색당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신규 석탄 및 가스 프로젝트는 지속될 것이며,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75%까지 높이는 것을 거절할 것으로 밝혔다. 호주 기후변화 및 에너지 장관 크리스 보웬(Chris Bowen)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입법화하는 것은 산업체와 투자자들에게 재생에너지 강국이 되려는 호주의 공동노력에 대한 가장 강력한 신호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만일 녹색당이 상원에서 지속적으로 입법에 반대하는 의사를 보이는 경우, 정부가 협상을 건너뛰고 단독적으로 정책을 펼칠 수 있음을 암시했다.
지난 7월 27일, 노동당은 온실가스 감축목표 43% 감축은 최소 기준이며, 이 목표가 상한선이 아니라는 것을 공표함으로써 일단락되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녹색당의 대표 애덤 밴트는 이어지는 정부의 발표에 아쉬움을 드러냈지만, 기후 위기를 향한 행동은 지체할 시간이 없어 온실가스 감축 목표의 43% 상향조정을 수용할 것으로 밝혔다. 이어서 트위터를 통해 "유럽과 미 캘리포니아가 불타고, 동시에 호주의 환경이 파괴되고 있으며 이 시기에 석탄과 가스개발을 계속하는 것은 기후 전쟁을 끝내지 못할 것"으로 남겼다. 이와 함께 더 강력한 기후 정책을 위한 협상을 지속할 것을 암시했다. 8월 첫 주쯤 하원을 통과할 것으로 예상되는 노동당의 기후 법안이 초안대로 상원을 통과하려면 녹색당과의 "신규 석탄 및 가스 투자 금지" 협상 결과가 가장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SK E&S가 투자한 호주 LNG 개발의 행방은?
지난 2020년 11월, 애덤 밴트는 한국 국회의원들과의 화상 연설을 통해 호주의 화석연료 수출 품목에 탄소 관세를 부과하고, 자유무역협정을 재협상하라는 말을 남긴 바 있어 호주 정치권에서 큰 파장이 있었다. 그는 한국이 호주 에너지 자원의 큰 고객임을 인지하고 있고, 화석연료 사용에 대해 경고의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다. 2030년까지 89개월을 남은 시점에서 만약 화석연료 신규 투자를 막기 위해 호주 기업 이외 해외 자본을 통한 화석연료 개발 투자를 먼저 손대기 시작하면 어떤 결과를 받게 될까?
호주 정부가 녹색당의 협상안을 수용하여 신규 석탄 및 가스사업 투자철회가 검토되는 경우, 우리나라 기업도 영향을 받는다. 대표적으로 SK E&S가 개발하고자 하는 논란 속 호주 바로사 해상 가스전 개발이 있다. 호주 환경단체는 이 개발사업이 가스 생산 단계에서 다른 가스전에 비해 2배 이상의 탄소 배출량을 배출할 것이며, 이산화탄소 200만 톤을 매해 배출될 것으로 예상했다.
SK E&S 측에서는 이러한 온실가스는 호주의 가스회사 SANTOS와의 협력으로 탄소포집기술을 통해 배출 상쇄를 이뤄낼 것으로 발표했다. 국내 언론에서 취재를 통해 SANTOS 측에 문의한 결과 탄소포집기술은 아직 기본 설계단계에 있기 때문에 불확실성을 갖고 있으며, 이에 따라 실제 가스 생산 시점은 SK E&S가 첫 생산 시점으로 예상한 2025년에서 2027년으로 미뤄질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답변했다.
한국의 몇몇 기후단체는 환경문제 및 탄소포집기술의 불확실성으로 인하여 사업의 타당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었다. 지난 3월, 가스전 주변 지역에서 거주하고 있는 원주민 3명과 강은빈 청년기후행동 공동대표가 한국무역보험공사와 한국수출입은행을 상대로 낸 SK E&S 바로사 가스전 사업 투자계약 금지 가처분 소송이 있었다. 그리고 한국의 기후단체 기후솔루션은 더 이상 석탄뿐만 아니라 천연가스를 포함한 화석연료에 한국의 공적 금융이 투자를 중단하라는 내용으로 글로벌 금융, 보험, 투자회사들의 압박도 거세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한국수출입은행의 가스전 투자 결정을 반대하기도 했다.
한국 법원은 청년기후행동이 원주민들과 함께한 가처분 소송을 기각했다. 이어서 소송이 제기된 후 잠시동안 투자를 보류한 것으로 발표했던 사업은 여론이 잠잠해지자 무역보험공사가 보증을 서고, 수출입은행은 3억 3천만 달러 (약 4,100억 수준)의 지원을 최종 승인하며 SK E&S는 개발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2012년부터 SK E&S는 이 지역의 LNG 개발 사업에 뛰어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10여년 간의 노력 끝에 드디어 시작점에 닿은 바로사 가스전 개발사업은 여전히 탄소포집기술의 유효성 논쟁이 있어 사업의 타당성을 의심받고 있다. 이 가스개발사업이 호주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부합하지 않는 이유로 좌초된다면, SK E&S가 투자한 시간과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될뿐더러 지원 투자를 결정한 우리나라의 공적 금융기관은 손실을 책임져야 할 수 있다. 선례로 한국전력이 호주 바이롱 석탄 광산을 인수, 개발을 시도했으나, 환경문제로 인해 사업이 무산되면서 투자금 4천억 원을 포함한 약 8천억 원의 손실을 책임진 전력도 있다.
우리나라는 2019년 기준 52억 달러가량의 액화천연가스(LNG)를 호주를 통해 수입했다. 규모면에서 호주에게 세 번째로 중요한 천연가스 고객이다. 앞으로 우리나라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위해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일정 기간 LNG의 사용은 불가피하다. 화석연료 개발사업은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지원하지만, 지구 반대편에서 호주의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방해할 가능성이 있다. 호주 시민들, 그리고 정책 결정자들은 "남 좋은 결정"을 달가워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