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지다>

by 김현정

<비워지다>


비우다 : 일정한 공간에 사람, 사물 따위를 들어 있지 아니하게 하다. 네이버 사전 정의입니다.



나는 춤이 좋다. 즐겁다. 사람의 마음을 밝게 해 준다.


나는 관절이 좋지 않다. 내 기억으로 초등 5학년 때 다락방에 올라가서 내려오다가 미끄러지듯이 떨어지면서 오른쪽 발목을 크게 다쳤다. 그 당시에는 의사 선생님이 집으로 오셨다. 왕진 오신 의사 선생님이 삐었다고 하셨다. 내 기억으로는 어머니가 밀가루에 겨자를 넣어서 반죽을 하여 다친 부위에 붙여 놓은 것 같다. 부기를 뺀다고 하신 것 같다. 그 이후 붕대를 감고 목발을 하면서 걸어 다닌 것 같다. 조심해서 다니다가 그만 왼쪽 발목도 똑같이 삐었다. 그 이후 발목 삐는 게 나의 일상생활을 불편하게 하고 하고 싶은 일들을 하지 못하게 주저하게 만드는 치명적인 질병이 되었다.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삐어도 금방 낫는다. 나는 걸어 다니다가 삐어도 걸어 다니다 보면 낫는다. 그런 사람은 발목을 다쳐서 고생을 안 해봐서 일상생활의 불편함도 그리고 그 통증이 얼마나 아픈지 잘 모른다. 걸을 때마다 느끼는 통증, 나는 이렇게 잘 걷고 싶은데, 걷는 게 마음대로 안 되는 것, 한의원에 오래 다녀야 하고,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걷는 것, 허리가 아픈 것, 골반이 비틀어지는 것, 무릎까지 허벅지까지 시리고 쬐이고 그런 아픈 통증을 모른다. 그래서 쉽게 말할 수도 있다.


일상생활 중 집안일부터 할 수 있는 반경이 좁아지고 할 수 없는 폭이 더 많아지는 그 불편한 심정을 잘 모른다. 건강한 사람은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의 아픔을 모를 수가 있다. 그러니까 동병상련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건강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타고 난 게 약골인데.


뼈는 튼튼한데 감기를 쉽게 걸리는 사람, 비염이 있는 사람,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 그런 것 하고 똑같다.


나는 몇십 년을 관절로 고생을 하다 보니, 내가 내 관절을 다루는 팁이 늘어났고, 무엇을 조심해야 일상생활을 잘 유지할 수 있는지 비법을 알게 되었다. 내가 아무리 조심을 해도 내 조심이 비켜나갈 때도 생겼다. 한의원을 한 두 달 다녀야 하고, 다시 원래의 걸음걸이로 일상생활을 편하게 할 수 있을 정도로 되는 시간이 아주 오래 걸려서 나는 춤을 좋아하지만 배울 수가 없었다. 나는 춤은 내가 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겼다.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었다.


산책, 스트레칭 체조, 걷기 외에는 할 줄 아는 운동도 없고, 할 수 있는 것도 제한되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라인댄스였다. 검색해 보니 이 정도는 할 수 있겠지,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런 내가 2024년 3월 라인댄스를 시작했었다. 첫날 1시간을 하고 왔는데, 3일을 침대에서 거의 생활을 하고 밥맛이 뚝 떨어졌다. 발목에서 무릎에서 열이 나고 시근거리고 온몸이 쑤셨다. 음악에 맞추어 박자도 맞추어야 하고, 안무 순서를 기억해야 하고, 1시간 동안 무척 재미가 있고 즐거웠는데, 내 감정과 마음과는 별도로 몸은 몸살이 났었다. 그런데 몇십 년 통증을 앓아 온 나는 병원에 갈 정도는 아니라는 것은 알았다. 그냥 푹 쉬면 될 것 같았다. 푹 쉬었다. 그리고 다음 주도 가고 또 다음 주도 가고, 좀 안 좋아도 빠지지 않고 수강했는데, 3개월 동안 발목에 무릎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었다. 예전보다는 들 수 있는 무게의 중량도 늘었다. 남들은 쉽게 들 수 있는 무게도 나한테는 문제가 되었다.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들었던 무게로 인해서 무릎 속에서 뭔가가 무너지는 느낌이 들고 종아리에서 발목에서 복사뼈에서 열이 나고 시근거리고 통증이 생기면 잘 걷지 못하고 또 한 두 달은 족히 한의원을 다녀야 정상대로 되었다. 15년 가까이 다니고 있는 한의원 의사 선생님이 본래 태어나기로 허약 체질이고 약골이라고 하셨다.


그렇게 발목과 무릎이 건강해졌다. 그래서 나는 또 도전할 수 있게 되었다. 30분 뒤에 있는 라틴댄스반에 여름학기부터 수강을 했다. 처음에는 걱정부터 앞섰다. 온라인 결재 했다가 환불했다가 다시 결재했다가 환불했다가 반복하면서 마음이 오락가락했었다. 할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을까? 그런데 나는 너무도 하고 싶었다. 라틴댄스가 너무 하고 싶었다. 룸바를 멋지게 추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발레리아 크라팍 무용수가 솔로 춤을 출 때처럼 소울이 느껴지는 뭔가가 올라오는 그 룸바를 추고 싶었다. 그녀처럼 추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해보다가 힘들면 포기하겠다, 내 발목과 무릎에 대해서 강사 선생님께 미리 말씀을 드렸다. 내가 다른 사람들만큼 못해서 제자리에서 내 요령껏 해도 이해해 주세요,라고.


처음에는 몹시 힘들었다. 라인댄스를 1시간 하고 30분 지나서 라틴댄스를 한다는 게, 힘이 부쳤다. 라인댄스에 에너지를 다 쓰고 난 다음에 화장실 갔다 오고, 회원 분들과 대화도 하고, 앞에서 라인댄스를 10분 정도 더 하게 되면 쉬는 시간이 사실 10분 정도 겨우 되었다. 라틴댄스는 몸짓 하나하나에 힘이 많이 들어간다. 에너지가 훨씬 더 필요했다. 30분쯤 지나면 힘이 달려서 내 발이 휘청거리고 내 발목이 내 의지하고 상관없이 흘러가는 것처럼 되어서 속상했었다. 그래도 하고 싶었다. 포기하고 싶지가 않았다.



포기하고 싶지 않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비워지게 된다. 춤을 출 동안에는 그 음악을 느껴야 하고, 박자에 맞추어 안무를 기억해서 정확한 동작을 해야 한다. 몰입이 필요하다. 잠깐 스치듯 딴생각을 하면 박자를 놓치고 안무가 흐트러진다. 집중력! 그 시간 동안 쌓여있었던 나의 속상함, 고민, 스트레스가 쓰레기통에 비워지게 된다. 점점 더 시간이 갈수록 더 비워지게 된다. 사람의 마음은 가벼워지고 그 대신 몸이 튼튼해진다.

둘째, 마음이 건강해지고, 몸이 건강해지니 일상생활도 훨씬 잘하게 되고 생각했던 계획들도 무리 없이 해나갈 수 있게 된다.

셋째, 사람들을 알아가는 재미와 즐거움도 생긴다.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과의 대화는 즐겁다.


나는 라틴댄스를 시작할 때 금요일 라인댄스반도 수강하게 되었다. 화요일 라인댄스 강사 선생님이 1주일에 2번 정도 하는 게 좋다고 하여서 나는 또 시간을 내었다. 화요일 선생님은 토요일에 하시는데 나는 토요일은 시간이 안 되어서 금요일에 수강하게 되었다. 선생님은 다르지만 더 좋은 점이 있었다. 각 선생님마다 개성과 매력이 다르고 가르치는 방법도 달랐지만 나는 그게 오히려 좋았다. 장점은 살리고 부족한 점은 메울 수가 있어서 내게는 유익하였다. 이 때도 안 하던 것을 자꾸 늘이니까 사람을 사귐에도 음악을 익히는 데도 안무를 배우는 데도 힘들었지만 그 기간을 잘 극복하고 나니, 나는 전보다 더 건강해졌다. 전에는 도로를 걷다가 튀어나온 곳을 제때 몰라서 발목이 휘청거리거나 쑥 들어간 곳을 잘못 디뎌서 또 발목이 휘청, 삐어서 고생을 한참 했는데, 지금은 유연하게 빨리 순발력 있게 대처하게 되었다. 내 발목이 알아서 잘 대응한다. 신기하다. 신기한 경험이다. 집에서 스트레칭 체조를 할 때보다 몸의 라인도 훨씬 예뻐졌다.


그래서 나는 춤이 좋다. 춤은 내 생각에는 음악, 무용, 운동이 합쳐진 종합예술 같다. 나는 춤을 예찬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집에서 유튜브 영상으로 바차타, 살사 연습까지 하게 되었다. 아침마다 10분 정도 잠깐 바차타 기본 스텝 연습을 하고 나면 마음이 훨씬 가벼워진다. 그리고 기본 스텝 연습을 하니 라인댄스 스텝도 더 잘 이해하게 되었고 안무도 쉽게 빨리 습득하게 되었다. 라인댄스에는 라틴댄스 스텝이 많이 들어간다.


"비워진다"

정말 비워진다. 내 경우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었다. 화요일 라인댄스 강사 선생님도 1년 정도 라인댄스를 한 후에 번아웃에서 탈출하여서 다시 직장생활을 잘하게 되었다는 어떤 수강생 후기도 말씀해 주신 적이 있었고, 금요일 라인댄스 강사 선생님도 아침에 교수님들 수업도 있고, 공무원분들 수업도 있는데, 그분들도 몰입감으로 스트레스가 없어지게 되었다. 스트레스를 생각할 틈이 없다. 배우는 시간 동안에도 고민을, 걱정을, 스트레스를 생각할 틈이 없고, 다음 주까지 안무 연습을 집에서 또 해야 하니까 어느 틈에 스트레스가 없어지게 되었다. 금요일 라인댄스 강사 선생님과 우연히 점심식사를 둘만 하게 되었는데 그때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게 되었다. 강사님은 내가 비워진다,라는 단어를 써서 이야기하니, 맞장구를 치시면서 수강생들에게 들었던 이야기들을 해주었다. 그리고 자신도 강사를 가르치는 강사인데, 그동안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또 강사 생활을 하면서 어렵고 힘들었을 때, 댄스를 가르치는 그 시간이 오히려 자신의 스트레스가 비워졌다고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었다. 라인댄스에 대한 예찬으로 즐거운 대화를 가졌었다.


정말 "비워진다"


아카데미에서 하는 댄스 수업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과 함께 배우고 익히는 것이라서 사람들에 대해서 알게 되는 시간도 되고, 직장이 아닌 또 다른 사회생활이기도 해서 세상을 알아가는 공부도 되어서 즐겁다. 세대가 다양하고 사람들의 성향, 직업도 다양하다. 그 무리 속에서 어울려지는 내 모습도 나쁘지가 않다. 사람들과의 조우, 사람들과의 대화, 그 속에서 내 자신이 성장하고 성숙해가는 그 과정이 나는 좋다.



#댄스 #라인댄스 #라틴댄스 #바차타 #살사 #룸바 #비우다 #비워지다 #몰입 #집중 #앙리 마티스 #건강 #일상생활 #발목 #무릎 #관절 #한의원 #춤 #예찬 #취향 #스트레스 #고민 #운동

이전 08화<자기는 특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