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스타그램을 하지 않고 있다. 네이버 블로그는 6년 전에 애용하는 도서관에서 무료로 잠깐 배울 때 시작하게 되었지만 배울 때 가입한 이후로 하지 않았다. 즉 SNS를 하지 않고 있다. 웬만하면 사적인 노출이 되는 것을 꺼려한다. 그러함에도 브런치에서는 내 내밀한 솔직한 감정들을 많이 담아냈다. 그것이 주는 좋은 점은 탁하게 나를 괴롭혔던 것들이 해소가 되었다는 점이다. 내밀하기 때문에 가까운 사람에게조차도 말할 수 없는 것들을 쏟아내면서 심리적인 치유가 된 점이 있었다. 브런치만의 장점이기도 하다.
나는 나의 신경을 거슬리는 것들을 분명히 알고 있다. 웬만하면 내 신경이 거슬려지는 것들을 잘하지 않으려고 한다. 나는 배우는 것을 무척 좋아하고, 내가 성장하는 동력을 가까이하려고 한다. 내가 배우는 것에 집중할 때 방해가 되는 것들, 내가 성장하는 동력에 문제가 생기게 되는 것들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오프라인으로 사람들을 만날 때 나는 무척 조심한다. 그 이유는 어떤 사람인지 잘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지난 4년 동안 사업을 할 때 그런 부분들을 많이 느꼈다. 겉으로는 좋아 보여도 어떤 일이 생기면 사람의 자세나 태도, 마음이 달라지기 때문에 조심을 한다. 사람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최대한 받지 않으려고 사람을 만나는 일을 적게 한다. 이점이 있다. 일상생활에서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쉽다. 감정의 평행선이 잘 유지되니까 생각해 둔 일들이나 계획해 둔 일들의 진척이 잘 된다. 내가 그 일상을 잘 유지하려고 의지를 가지니, 내 옆 사람도 함께 평정심 유지를 잘하려고 한다.
어쩌다, 식사 전이나 도중에 대화가 어긋날 때도 있다. 전 같으면 둘 중 한 사람이 자극을 받아서 격노할 때가 있었다. 그러면 그 찰나의 순간 때문에 그때부터 며칠, 아니 몇 주가 문제가 될 때도 있었다. 그런 시간들을 거쳤기 때문에 서로 안다. 일상에서 서로가 작은 펀치가 안 나가도록 서로의 감정이나 안색을 살펴주는 여유, 인내심이 생겼다.
그리고 의사를 정확히 전달하여도 상대가 귀를 막고 있으면 아무리 좋게 설득력 있게 논리적으로 잘 말한다 해도 실패할 확률이 더 많다. 귀를 열고 있으니 전처럼 굳이 기승전결식으로 이야기하지 않아도 그 말의 의미, 핵심 파악을 빨리 한다. 그 또한 그동안의 시간들이 쌓인 결과다.
집 밖에서 사람들의 짧은 만남도 예전 같으면 고슴도치처럼 자극을 받아서 뾰족하게 남아서 마음이 겉돌고 속상했겠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저, 그러려니 한다.
위층 층간소음도 마찬가지다. 별반 달라진 것은 없지만 그냥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층간소음을 일으키는 여러 가지 요소를 직접 보고 있는 아이들이 닮아가게 된다. 그게 벌이다, 그런 생각. 그런 생각을 하게 되니 층간소음을 일으키는 사람을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물론 층간소음 나면 속상하지만 내가 피한다. 그 층간소음 일으키는 시간에 최대한 마음이 쓰이지 않도록 음악을 크게 틀거나 외국어 공부에 열중하거나 도저히 안 되면 외출을 한다. 층간소음 조절하는 센터에 접수하는 것도 남편에게 한번 이야기하고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았다.
남편이 전화해서 자문도 해보고 그 사이트에 들어가서 읽어본 후에 내게 이렇게 말했다. 자세히 적어야 할 부분이 있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나 역시 신경 쓰고 싶지가 않았다. 그런 시간들로 나의 시간들을 빼앗기고 싶지가 않았고, 사업적으로 바쁜 남편에게도 귀찮게 하고 싶지가 않았다. 우리 두 사람은 층간소음, 그냥 잊어버렸다. 우리들의 일들이 너무 바쁘게 돌아가니까. 우리가 나빠지는 게 아니라 그런 층간소음을 배우는 아이들이 더 문제겠다. 그러고 말았다.
생각의 관점이 달라지고 나를 힘들게 하는 요소들을 정확히 알고, 그런 요소들을 배제하려고 노력하는 삶을 살게 되니, 점차적으로 좋아지는 부분이 있다. 유튜브와 숏폼에도 이런 영상을 본 적이 있다. 나이가 들면 사람을 적게 만나는 것이 더 정신 건강에 좋다고. 나는 그 부분에 동의하는 부분이 있다.
나를 좋게 해주는 부분이 더 많은가? 나를 안 좋게 해주는 부분이 더 많은가? 그런 걸 생각할 때 판단이 쉬워졌다.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나에게는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