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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정 Jul 09. 2024

<이제 어디로 가는 거야?>

- 당신 없으면 난 이제 아무것도 못해.

양가감정

미운 감정, 좋은 감정

원망하는 마음, 고마운 마음

속상한 마음, 애처로운 마음

아, 힘들다. 마음이 한 가지가 아니라서.


동대구역과 비슷했다. 부산역에 처음 왔다. 그런데도 눈에 익은 것처럼 한눈에 스캔이 된다. 문화센터 수업을 받으러 1주일에 2번씩 동대구역에 가게 된 것이 도움이 된 것 같다. 나가는 곳, 타는 곳, 화장실, 식당가가 한눈에 들어온다. 

내 손을 잡은 남편이 어린애처럼

"어디로 가면 돼?"

두리번거리며 물어온다. 자가운전만 하니, 남편은 역에 올 일이 거의 없다. 한국이 아닌 외국에 온 것처럼 낯설어하는 남편이 귀엽기도 하고 약간 돈키호테 같기도 하다.

"저기에 화장실이 있네. 화장실 갔다가 식사하러 가요."

2층에 한식가가 있네요, 당신 없으면 난 이제 아무것도 못해, 살갑게 구는 남편이 밉지는 않네. 동대구역과 비슷한 것 같아요. 가벼운 대화, 두 사람은 들떴다. 


제13회 부산 아트 페어에 가기 위해 4월 14일 일요일, 우리 부부는 12시 30분쯤  부산역에 도착했다. 일단은 점심식사를 하고 양치를 한 후에 지하철을 타고 가기로 했다. 1호선을 타고 서면역에서 내려서 2호선으로 갈아타고 벡스코역에서 내려서 9호선 쪽으로 올라가 100미터 걸으면 일요일이니 41분쯤 걸린다고 미리 카카오맵으로 확인해 두었다. 식사하고 지하철로 이동하여 표를 사고 기다리는 시간까지 계산하니 1시 30분쯤 이동하면 2시 30분쯤 도착할 것 같았다. 여유가 있다.


2층 식당가로 올라갔다. 남편은 달걀프라이가 올라간 일반 비빔밥을,  나는 돼지고기가 올라간 돌솥비빔밥을 먹었다. 식사가 나쁘지는 않았다. 

역에는 빨간색 스타킹을 신은 아가씨도 있었고, 지하철에는 양갈래로 예쁘게 머리를 땋은 아주 가는 허리 부분 위의 살갗을 드러낸 하얀 탑과 미니스커트를 입은 아가씨도 있었다. 멋쟁이들이 많이 보였다. 


부산아트페어는 명성대로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역에서 간식으로 파리바케트의 약과와 수제과자를 사 갖고 갔다. 갤러리 관장님께 인사를 드리고 강사 선생님의 작품 앞에서 남편과 나는 사진도 찍었다. 내가 작품을 볼 동안에 남편은 작품 옆에 있는 가격들을  훑어보았다. 나중에 이 그림은 얼마이다,라고 말해주었다. 빨간색 동그란 스티커는 이미 팔린 거라고 했다. 처음 가서 얼떨떨했었다. 갤러리의 관장님, 직원들, 작가들이 작품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을 해주었고, 관장님이나 직원들은 작품을 팔기 위해 정성을 들였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 가는 작품이나 마음에 드는 작품에 사진들을 찍었다. 나도 남들처럼 사진을 열심히 찍었다. 광장 같은 넓은 곳을 몇 바퀴 돌면서 감상하니, 나중에는 지쳤다. 마련해 놓은 카페가 있어서 도넛과 아메리카노로 당분을 보충했다. 잠시 쉬면서 관람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젊은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요즘에 MZ세대들은 미술관이나 아트페어에서 데이트를 한다고 한다. 그리고 혼수로 작품을 산다고 한다. 신문화인 것 같다.


남편은 "당신 덕분에 이런 곳도 와 보네" 좋아해 주었다. 나도 어깨가 으쓱해지며 덩달아 기분이 더 좋았다. 

남편과 기념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새로운 문물을 접하고 우리 부부는 좀 신이 났었다. 


집에서 명상하고 사색만 하고 있으면 도태될 수가 있다. 행동해서 뭔가를 긍정적으로 움직이는 게 훨씬 낫다. 문화센터의 현대미술사 강사 선생님이 아트 페어 초대장을 주셨다. 회원 한 명마다 원하는 대로 1~2장씩 주셨다. 그런데 단 2명만 갔었다. 나는 남편과 동행했었다. 집에서 웅크려 있기보다는 사람을 만나고 배우러 다니니, 시야도 넓어지고 새로운 정보도 알게 된다. 그리고 적극성을 갖고 행동하니 사고의 확장도 있게 된다. 


나는 부산아트페어에서 남편과의 추억도 만들고, 새로운 문화, 아트페어를 알게 되었다. 미술과 예술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이 커지는 것을 느꼈다.


하루가 여물게 꽉 찬 기분, 숙제를 잘 마무리한 것 같았다.

밤 기차는 도시의 불빛을 머금고, 내 보금자리인 도시로 달려갔다. 오징어땅콩 과자봉지를 살짝 쥐고 가르릉 거리며 쌕쌕 자고 있는 남편의 얼굴이 기차 창가에 비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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