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적절함

나와 처음 만나는 날5

by 달리면서

내 아버지는 올해 여든여섯, 지금 노인요양병원에 죽음을 앞에 두고 누워계신다. 산을 무척 좋아해, 흔히 말하는 건강을 위한 등산이 아닌 심마니 정도의 노동으로써의 산을 말한다. 산으로 향할 때와 한 봇짐 메고 들어올 때 가장 행복해 보였다.

내 아버지는 세 살 때 할아버지를 여의고, 큰할아버지댁에서 자랐다. 아버지의 사촌 형제들은 다들 좋으시고, 그 많은 형제 속에서 내 형제라 생각했을 법도 한데 가족에 대한 결핍이 컸던 모양이다. 돈은 무소유를, 자식은 다다익선을 실천하셨다.

무엇이든 아버지의 결정에 따라야 했고, 토를 달면 나쁜 계집애가 되었다. 그때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거리를 느꼈다. 회사생활을 하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아버지는 반대로 힘이 빠져가면서 우리 사이의 균형은 엇비슷해지기 시작하였다.

그 나이가 서른이 넘어서라고 기억하는데, 그전까지는 아버지의 말은 감히 거역할 수 없었다. 균형이 어느 정도 맞춰졌을 때, 아니 기울어지기 시작했을 때 아버지가 나의 노력으로 흐뭇한 미소를 지을 때, 나는 음울해지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그 후부터인지 정확한 경계는 없었지만 엄마를 통해서 대화를 이어나가는 게 훨씬 편했다.

내가 열 살 때 내 아버지는 40대 중반을 넘어섰을 때이다. 그래서 그 나이의 그를 이해하고 힘들었겠다 움츠려진 어깨를 토닥토닥 위로해주고 싶다. 그러나 그런 그의 선택과 결정과 주장으로 나는 많은 날들을 내 밖을 향해 살아온 것은 아닌지 되돌아본다.

산을 좋아했던 그는 신나게 산을 다녔는데, 올 6월 중풍 6개가 발견되고 급속도로 심부전과 폐렴으로 생과 사를 오가고 있다. 한때 아버지의 원망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 아버지의 이런 모습에 백지처럼 사라진 것도 사실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모든 깨달음의 시의적절함을 나는 믿는다.

나를 가장 믿어준 나의 아버지가 이 세상 떠나는 날도, 내가 모든 일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고 각자의 때가 있다는 사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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