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왕참나무의 교훈
마당이 생기면서 아내는 정원을 가꾸는 재미가 쏠쏠한 것 같습니다. 동네 언니들에게 수국과 이것저것 꽃들을 얻어오더니 화원에 가서 직접 원하는 꽃과 나무를 사 오기도 합니다.
경기도에 가보고 싶은 곳이 있다고 해서 주말에 같이 다녀왔습니다. 시골의 농원과는 다르게 현대적인 시설에 인테리어와 조경도 외국느낌이 나게 해 놓아 도시여성들의 감성을 사로잡기 좋을 것 같았습니다.
입구부터 키가 높은 나무들이 부지의 경계를 따라 조경수로 심어져 있었습니다. 약 20여 그루 되는 그 나무들은 키가 15~20미터 정도 되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나무에 뭔가 문제가 있어 보였습니다.
일단 키에 비해 왜소했습니다. 속성수의 경우에 키를 먼저 키우다 보면 왜소해 보이는 경우도 있지만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닌 것이 확실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죽은 가지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입구의 건물 옆에 있는 나무는 일조량이 많지 않아 그렇다 치더라도 다른 나무들은 해도 잘 받고 옆에 싸우는 나무들도 없는데 왜 저런지 궁금했습니다.
사장님을 만나자마자 그 나무에 대해 물어보았습니다. 이곳 매장을 만들 때인 3년 전쯤에 심은 대왕참나무라고 하네요. 이야기를 듣고 보니 미국에서 많이 보았던 핀오크(Pin Oak)와 같은 나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단풍이 예쁘고 수형이 예뻐서 그런지 가로수나 정원수로도 많이 심었던 것 같습니다. 골프장에서도 많이 본 것 같고요.
사장님께 나무 상태가 안 좋은 것 같은데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잘 모르겠다고 합니다. 사장님도 걱정을 하고 있던 중이라 이것저것 이야기를 하다 보니 하나 짚이는 것이 있었습니다. 이 땅이 개발하기 전에는 논이었다고 합니다.
논과 밭의 차이를 아시나요? 논에서는 주로 쌀농사를 짓죠. 밭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작물들을 키웁니다. 논이 밭과 다른 가장 큰 차이는 물이 빠지지 않고 고여 있다는 것입니다. 모내기하는 장면을 뉴스에서 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나무들도 물을 좋아하는 나무가 있고 그렇지 않은 나무가 있습니다. 버드나무는 물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물이 모자라면 힘들어합니다. 주로 물이 많은 곳에서 발아를 합니다. 산 위에서 버드나무를 볼 수 없는 이유입니다. 소나무는 산 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소나무는 빛을 좋아합니다. 빛을 많이 받을 수 있다면 물이 귀한 산 위 바위 옆에서도 살 수 있습니다.
개발 전에 논이었던 땅에 심은 대왕참나무들이 다들 상태가 안 좋습니다. 그렇다면 대왕참나무가 물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나무라서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요?
집에 돌아와 검색을 해보니 역시나입니다. 대왕참나무는 습한 땅에서 살기 적당하지 않다고 하네요.
그 사장님은 대왕참나무의 단풍과 수형의 아름다움을 보고 조경수로 선택하는 안목을 가지고 있었지만 논이었던 땅에 대왕참나무를 심게 되면 그들이 힘든 삶을 살게 될 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하신 겁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다 보면 쓰임이 올바르지 않아 힘들어하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습지에 대왕참나무를 심은 격입니다. 능력과 성향에 잘 맞는 일을 맡기면 훨씬 더 좋은 성과를 내고 성취감도 느끼면서 일할 수 있을 것 같은 경우입니다. 회사와 본인 모두에게 윈윈이죠. 이것이 안 되는 이유는 관리자가 직원의 능력과 성향을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본인의 잘못도 있을 겁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를 알고 있어야 그 분야의 경험을 쌓아 좋은 성과를 내는 경력자가 될 수 있을 겁니다.
내가 무엇을 잘하고 좋아하는 사람인가? 즉, 나는 어떤 사람인가? 이 주제는 서점에만 가도 얼마나 광범위하고 어려운 주제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만큼 중요한 일이기도 합니다.
애니어그램, MBTI 등 많은 자기 분석 툴이 보편화되었습니다. 나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감’보다는 과학적인 툴이 더 정확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겠죠. 하지만 다양한 툴을 사용해 결과를 받아본 입장에서 분석툴의 결과를 들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정의하려다 보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내가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을 찾으려면 나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방법이 제일 정확한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 무엇을 할 때 제일 즐거웠는지,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빠져 들었는지, 무엇을 했을 때 칭찬을 많이 들었는지 하는 것들입니다. 대단한 것이 아니어도 됩니다. 작은 단서들을 찾아 키워나가면 되니까요.
저 대왕참나무가 올바른 토양에서 자기 발아를 하여 자랐다면 어땠을까요. 멋진 단풍과 그늘로 많은 사람들의 찬사를 받으며 생애를 살 수 있었을 겁니다. 잘 맞지 않는 토양에 이식되어 움직일 수 없는 삶을 지속해야 하는 대왕참나무를 바라보는 마음은 무겁지만 사람은 스스로 선택하고 남은 삶을 더 아름답게 키워갈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음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