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채나무

560살 보호수, 엄마의 품.

by 김주한

두어달 전부터 강변 산책로의 느티나무 가로수 전지작업이 있었습니다. 약 1km 정도의 거리라 한 달 정도 작업을 한 것 같네요.

어느 날 작업 중에 휴식을 하는데 저희 팀의 한 형님이 저 멀리 있는 나무를 보고는 “꽃이 핀 모습이 말채나무 같은데 말채나무가 저렇게 큰가? 저렇게 크기가 쉽지 않은데?”라고 합니다. 점심을 먹고 와서 나무를 보러 갔습니다. 꽃이 밤나무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좀 더 희고 예쁩니다. 나무아래에 보호수 표지석을 보니 560살을 먹은 말채나무입니다.

560살이된 말채나무. 수형이 비대칭적입니다.

가까이에서 본 560살의 말채나무는 크고 아름다웠지만 많이 늙었습니다. 가지들은 제 멋대로 자라 있고 병들고 죽은 가지들이 엉켜있고 수형은 대칭이 맞지 않습니다.

“와! 전지해 주고 싶다!” 둘이 동시에 내뱉은 말입니다.

한 달 정도 다른 작업과 장마피해목들의 정리가 끝나자 말채나무 보호수를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5월에 피었던 꽃이 지고 나니 나무는 더 앙상해 보입니다.

장마가 끝난 무더위 속에서 나무에 줄을 걸고 올라갑니다. 메인로프를 타고 올라간 다음 가지에 올라서서 안전줄을 걸고 자세를 잡으며 나무를 살펴봅니다.

이끼가 끼고 버즘이 생긴 말채나무 수피.

나무가 늙고 병들었음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수피에는 이끼가 가득 피었고 버짐도 피어 있습니다. 도장지가 제 멋대로 자라 햇빛과 통풍을 막고 있었습니다.

‘많이 늙었구나. 우리 엄마 닮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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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올라앉아 가지를 둘러볼수록 엄마와 닮은 점이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엄마는 11월이면 만으로 87세가 됩니다. 회색 머리카락은 한 번은 검어지더니 지금은 말채나무꽃보다 희고 실크처럼 부드럽습니다.

얼굴과 손등은 지방이 빠져 얇고 건조한 주름으로 덮여 있습니다. 무릎에 물이 차서 생긴 부종은 나무의 옹이와 같고 주름 역시 나무의 주름과 닮았습니다.

150년 된 느타나무의 옹이와 주름

자리를 잡고 죽은 가지들을 잘라 봅니다. 죽은 가지들을 정리하면 잘라줘야 할 다른 가지들이 보입니다. 위나 아래로 자라 햇빛을 막는 가지들, 아직은 작지만 놓아두면 나중에 문제가 될 가지들, 서로 겹쳐져 싸우는 가지들.

가지를 자르며 혼잣말을 해봅니다. ‘엄마, 오늘 예쁘게 미용해 줄게’

다른 때보다 톱질을 하는 손에 정성이 더해집니다. 지피융기선에 맞추어 수피가 뜯김 없이 깨끗하게 잘라내고 트리코트를 발라주어 상처를 보호해 줍니다.

어느 정도 작업을 하며 땀을 한 바가지는 흘리고 잠시 쉬며 물을 마시려고 자리를 잡고 앉습니다. 늙은 나무들은 줄기기와 가지가 굵어, 앉아 쉬기 좋은 곳이 있습니다. 물을 마시며 잠시 쉬다 보니 엄마 옆에 앉아 수다를 떨던 때가 생각납니다. 나무의 품이 엄마의 곁과 비슷한 느낌입니다.

말채나무 꼭대기에서 작업중인 필자.


말채나무의 수명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 나무는 560년이나 살았지만 해가 잘 드는 곳에 있고 옆에 싸우는 나무가 없어 큰 병만 피한다면 앞으로도 오래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엄마도 87살이면 적은 나이는 아닙니다. 조만간 돌아가신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입니다. 엄마도 살날이 얼마 안 남았다는 얘기를 입에 달고 삽니다. 저도 압니다. 엄마가 많이 늙고 병든 저 말채나무와 비슷하다는 걸요. 그렇지만 미리 마음의 준비 같은 건 하고 싶지 않습니다. 가끔 볼 때마다 늘 그런 것처럼 옆에 앉아 간식을 까먹으며 엄마가 좋아하는 옛날얘기들을 들으며 시시덕대는 그 시간을 자연이 허락하는 데까지 갖고 싶습니다.


전지를 끝낸 말채나무는 말끔해졌습니다. 500년은 더 살 것처럼 건강해 보입니다. 이번주말에 만나는 엄마도 말채나무처럼 말끔하게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전지작업이 끝난 말채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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