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에 맞서야 하는 이유
시골에는 보호수가 많이 있습니다.
제가 일하는 지역에만도 보호수가 100여 개 이상이 등록되어 있습니다.
시골여행을 하다가 보면 웬만한 마을 입구에 하나씩 서 있는 나무들은 보호수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가 올해 작업을 했던 보호수들은 250년이 된 것부터 560년이 된 말채나무까지 나이도 천차만별입니다.
대개 느티나무가 많았었습니다.
숲을 이루는 나무들은 서로가 햇빛과 양분을 두고 다투는 경쟁관계이기도 하지만 오랜 시간 낙엽을 떨구어 비옥해진 토양을 나누고 모두의 뿌리로 물을 머금어 산사태를 막기도 하고 거센 바람을 막아 가지가 부러지는 것을 예방하기도 하는 애증의 공생관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들판에 서 있는 나무들은 홀로 바람과 싸우고 스스로 떨군 낙엽만으로 부엽토를 만들어야 합니다.
얼핏 보면 외롭게 서서 살아가야만 하는 운명처럼 보입니다.
정말 우리가 보는 것처럼 들판에 홀로 서 있는 나무들은 외롭고 쓸쓸한 나무들일까요?
오래된 대부분의 보호수들은 숲이 아니라 넓은 들판이나 마을입구에 홀로 서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이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홀로 서 있는 나무는 인간이 보기에는 외로워 보이지만 사실 광합성의 주재료인 빛을 사방에서 하루종일 취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지의 분포도 전방위로 균형이 잡혀있고 많은 에너지를 섭취하여 균형 잡힌 대사를 할 수 있게 됩니다. 태풍이나 번개, 수해 등의 천재지변을 겪지 않는 한 장수할 수 있는 기본 조건을 갖춘 셈입니다.
우리 인간은 어떨까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의 교류 없이 살 수 없는 세상입니다.
살기 위해 사람들 속에 섞여 어울리고 있지만, 관계 속에서 생기는 문제들로 상처받고 외로워합니다.
외로움을 잊기 위해, 관심을 받고 싶어, 사람들 사이 남는 공간을 찾아 다시 헤맵니다.
저 보호수들처럼 홀로 서 있을 때 더 잘 살 수 있으려면 좋으련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홀로 살아가자니 불편함과 외로움이 괴롭히고, 어울려 살아가자니 관계가 너무 어렵습니다.
어울려 사는 삶, 혼자 사는 삶. 어떤 것이 나에게 더 어울리는가?
저에게는 자연스럽게 이에 대한 답이 주어졌던 것 같습니다.
홀로 선 나무를 보며 이 글을 쓰게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요새 유행하는 MBTI를 15년 전에 해 본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에 외향적 성향인 E가 나왔습니다.
그때 상담선생님은 제가 타고난 E가 아니라 학습된 E일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분석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어릴 적의 저는 아주 내향적인 아이였습니다.
성장을 하고 사회에 나와 일을 하면서 외향적인 사람으로 가면과 옷을 입고 살게 되었습니다.
학습된 E로 살아가며, 저에게는 혼자 있는 시간이 더 즐거운 시간이었던 적이 많습니다.
완전몰입상태를 경험하며 책을 읽어보기도 하고, 하루종일 기타 연습을 하기도 하고, 남는 시간마다 카메라를 들고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어보기도 했습니다. 누구의 간섭도, 방해도, 참견도 없이 온전히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보낸 시간들이, 그 시간에 경험한 많은 것들이 제 머릿속에, 가슴속에 삶의 에너지로 축적되었고, 시간이 지나 오늘의 제 삶을 더욱 풍성하고 의미 있게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데 두려움을 가지지 않고, 남들이 해보지 않은 것들을 시도하는데 주저함이 별로 없습니다. 실패가 부끄럽거나 두렵지 않고 잘하기 위한 과정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럽습니다.
저는 제가 이런 풍성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이유가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서 마주한, 타고난 성향과 다른 외향적 인간으로 살면서 겪게 된 감정적 괴리인 외로움을 잘 마주하였고, 잘 다스렸고,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떨군 낙엽으로만 부엽토를 만들 수 있고, 바람을 막아주는 친구들도 없는 들판에 홀로 서 있는 나무처럼, 외로움을 마주하고, 견뎌내고, 마침내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사람으로 홀로서기를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온종일 햇살을 받으며 충분한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나무처럼 충만한 에너지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사람들 사이에서 상처받지 않고, 세상의 불편함들을 적당한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는 여유와 면역이 생기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저 말채나무가 560년이란 긴 시간을 살듯이, 우리도 죽는 날까지 풍성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도 그러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