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상처를 대하는 방법
오늘은 어느 마을 입구에 있는 느티나무 전지작업을 했습니다.
제 나이와 비슷해 보이는 이 나무는 전깃줄 옆에 있어 이미 이리 잘리고 저리 잘려 수형도 보기 좋지 않을뿐더러 상태도 그리 좋지 않아 보였습니다.
사실 도시나 시골이나 전선이 다니는 자리와 가로수를 심는 자리가 비슷하다 보니 전깃줄에 방해가 되는 가지 제거를 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전깃줄에 닿아 있는 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면서 불이 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래쪽 가지를 정리하고 위쪽으로 올라가 보고 잠시 놀랐습니다. 가지와 가지가 맞닿아 싸우는 경우도 많이 보았고 나무에 묶어놓은 철사나 전깃줄이 가지가 굵어지면서 살을 파고 들어가 있는 경우도 많이 보았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 보았습니다.
나무는 특히 교목은 자라면서 부피생장을 하죠.
이 가지는 처음 자리를 잡고 뻗을 때는 별 문제가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부피생장을 하다 보니 옆에 전깃줄을 지탱하는 와이어와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가끔 가지와 가지가 이런 식으로 만나면 힘이 좀 더 센 가지가 약한 가지의 살을 파고들어 약한 가지는 중간이 파인 모양으로 자라는 경우를 봅니다.
그런데 이 가지는 자기의 힘으로 와이어를 밀어 보다가 자기가 힘이 밀리는 것을 느꼈는지 와이어를 품고 자라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가지 일부분의 물관을 잠시 희생하더라도 시간이 지나 와이어를 완전히 품게 되면 가지의 심부로 와이어를 품게 되면서 성장이나 생육에는 별 지장이 없다는 것을 알고 이물질을 품는 전략을 취한 것이죠.
사진으로 보는 것처럼 가지는 굵게 자라 수형의 한 축을 책임지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살다 보면 이런저런 상처를 받기도 하고 한계에 부딪혀 고민을 안고 살기도 합니다. 피할 수 있다면 피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피할 수도 없고 나의 생활과 직접 연결되는 일이라면 고민은 더 깊어지고 스트레스로 힘들어하게 됩니다.
이때 저 나무가 그랬듯 우리도 잠시 힘들더라도 그 상처와 한계를 품어 안을 수 있을까요?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고, 인정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고, 용서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지만 분노와 실망과 슬픔만으로 해결되는 일이 아닐 때, 그때는 우리도 저 느티나무처럼 상처를, 한계를 품어 안을 수 있을까?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퇴화된 나의 꼬리뼈처럼 나의 삼의 일부였지만 더 이상 나의 삶에 영향을 미치지 않게 되지 않을까? 그래서 더 성장할 수 있지 있을까? 생각하게 되는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