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느티나무 전지작업을 했습니다.
느티나무야 시골에서는 워낙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이니 특별할 건 없지만
오늘 작업한 나무는 몇 년 전에 절단전지 작업을 한 나무였습니다.
느티나무나 벚나무 같은 교목들은 솎음전지를 하거나 절단전지를 하는데
절단전지는 주로 도시의 가로수들에서 볼 수 있습니다.
전지작업을 한 가로수를 보며 “왜 나무를 저렇게 잘라놨어?”라고 한마디 하셨던 적이 있으실 겁니다. 아마도 그것이 절단전지라고 보시면 될 겁니다.
절단전지는 수고와 수폭을 제한하는데 목적을 둡니다. 목적을 달성하는데 효과적이긴 하지만 당장 보기에 좋지 않고 나무도 힘들어하죠. 조경업체들이 도시의 많은 가로수 전지작업을 하기엔 더 효율적이기도 합니다.
아보리스트는 나무의 생장과 유지관리에 목표를 두고 있기 때문에 특별한 일이 아니면 솎음전지를 합니다. 시간이 들고 번거로운 작업이지만 작업을 마치고 내려와 나무를 올려다보면 흐뭇함과 자부심이 절로 생깁니다. 가지들이 지저분하게 겹쳐 해가 들지도 않고 죽은 가지가 매달려 있던 나무였는데 어느덧 쭉쭉 뻗은 가지 끝에 나뭇잎들이 바람에 살랑이고 있습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아들이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친구들과 이야기하던 중에 가정문제로 고민을 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더군요. 아들이 또래 중에 입이 무겁고 성숙한 편이라 고민 상담 겸 이야기를 했나 봅니다.
부모사이에 가정폭력을 겪은 아이, 이혼가정의 아이, 부모와 사이가 좋지 않은 아이 등. 이야기를 듣는데 어떤 이야기를 해줘야 할지 모르겠다고요.
그러면서 자기는 엄마아빠 같은 부모를 만나서 이 생의 운을 다 쓴 것 같다, 자기는 딱 아빠처럼만 사는 게 목표다라고 얘기를 합니다. 아빠로서 보다 한 인간으로서 더 이상 없을 찬사였습니다.
그러나 아들의 이야기에서 더 기억에 남은 건 저에 대한 찬사가 아니라 상처받은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이런저런 상처를 받고 자라서 그런지 성격이 모난 부분이 많다고 하더군요.
그 이야기를 듣고 오늘 작업한 느티나무가 생각났습니다.
절단전지를 한 나무는 잎을 달고 있어야 할 가지들을 다 잘라버렸는데 어떻게 광합성을 하고 살아가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그 생물학적 기작을 여기서 다 설명하긴 어려우니 그냥 그들은 다 방법이 있다고만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가지가 절단된 이 느티나무는 절단된 부위에서 다시 가지를 뻗어내기 시작합니다. 당장은 버틸 수 있으나 광합성이 없이 오래 버틸 순 없으니 비상계획을 발동시켜 최대한 빨리, 최대한 많이 가지를 뻗어 냅니다.
태어난 자리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진 나무들은 이런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대비책을 DNA에 기록해 놓았기에 결국 성공적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안정을 찾아갑니다.
하지만 상처받은 가지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자라날 순 없습니다.
아래 사진처럼 절단된 부위 근처에서는 사방팔방으로 가치들이 뻗쳐있고 가지 중간에도 도장지들이 중구난방으로 자라나 있습니다.
규칙 없이 자란 가지들은 또다시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며 자리싸움을 하고 세력이 약한 가지들은 탈락하는 악순환을 겪게 됩니다.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는 아이들이 상처를 받은 후 자라게 되면 어떤 모습이 될까요?
절단된 상처를 가진 나무들은 탈락하는 가지들이 생기고 못생긴 나무가 되지만, 유소년기에 받지 않아도 될 상처를 가진 아이들이 자라면 자존감, 공감능력, 배려심, 자신감 등등 온전하고 독립된 성인이 가질 수 있는 소양중에서 무언가 빠지고 변형된 모습으로 자라나 있지 않을까요?
살다 보면 좋은 사람, 이상한 사람 다 만나게 됩니다. 그 이상한 사람을 만나게 되면 어릴 적 상처가 많았나 보다 하고 생각합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되면 상처를 받지 않는 좋은 가정에서 사랑받으며 자랐구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는 아마 스스로 상처를 잘 치유하며 자라난 사람일 수도 있을 겁니다.
부디 상처받은 그 아이들이 스스로 치유하는 법을 알게 되어 훗날 좋은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