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가 된 이후의 세계

<은유의 잔향> Episode 4

by 은유의 잔향

부제: 자라기 위해 비워낸 자리


가까이에서 보면,
해체는 언제나 잔인한 선택처럼 보인다.


하지만 어떤 존재도
건강하게 자라기 위해서는
멈춘 부분을 덜어내는 일을
피할 수 없다.


화분을 오래 들여다본 사람들은 안다.
빛을 가리는 가지,
안쪽에서 서로를 짓누르는 가지,
더는 뻗어가지 못하는 가지가 있을 때
잘라내는 일은 상처가 아니라
다시 자라기 위한 공간을 만드는 일이라는 것을.


관계도 그렇게 자랐다가,
멈추고,
엉키고,
서로의 빛을 가리는 순간이 온다.


그때의 ‘가지치기’는
파괴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정돈이었다.
그리고 더 나은 방향으로
뻗어나가기 위해
자리를 비워주는 결정이었다.


잘라낸 자리에서
진짜 변화는 비로소 시작되었다.


혼자가 되는 일은
텅 비는 일이 아니라,
새로 자라기 위한
가장 깊은 준비였다.


오늘의 잔향 — Nils Frahm – “Re”

(이 글을 쓸 때 흐르던 음악)


혼자가 된다는 것은 비워지는 일이 아니라,

다시 자라기 위한 자리 하나를 마련하는 일이었다.


※ 이 글에 언급된 음악의 모든 권리는 해당 아티스트에게 있으며,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습니다.


ⓒ 이혜미, 『은유의 잔향』 중에서. 인용 시 출처 표기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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