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체는 어떻게 결심되는가

<은유의 잔향> Episode 4

by 은유의 잔향

존재는
견고한 구조물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하는 유기체에 가깝다.


한때는
흠이 있어도 붙잡고 있어야 한다고,
썩어가는 다리라도
두 다리를 지탱하는 것이 낫다고
말하던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살아 있는 존재는
건강하지 않은 결합 속에서는
자라지도, 숨 쉬지도 못한다.


타협과 침묵이
서로를 지켜주는 방식이라 믿었던 시간들 속에서,
나는 어느 순간
그 결합이
나를 비롯해
상대방까지도
더 나은 사람이 되지 못하게 한다는 사실을
조용히 인식하게 되었다.


어떤 관계는
지탱하는 것이 남김이 아니라
오히려 잠식이 되는 순간을 맞는다.
그때부터 해체는
파괴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정렬이 된다.


腐木不可雕也,糞土之牆不可杇也.
썩은 나무는 조각할 수 없고,
무너진 흙벽은 덧바를 수 없다.


이 고전의 문장은
관계를 향한 냉혹한 단정이 아니라,
더 망가지지 않기 위해
더 일찍 내려야 했던 결심의 구조를 설명한다.


나는 무너뜨리려 한 것이 아니라,
더 이상 기댈 수 없는 구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자 했다.


멀어짐은 실패가 아니라
나를 다시 세우기 위한
가장 은밀하고 내밀한
해체의 기술이었다.


오늘의 잔향 —
Hania Rani – Leaving
(이 글을 쓸 때 흐르던 음악)


해체는 무너뜨리는 기술이 아니라,
더 이상 기댈 수 없는 구조를
인정하는 용기였다.


※ 이 글에 언급된 음악의 모든 권리는 해당 아티스트에게 있으며,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습니다.


ⓒ 이혜미, 『은유의 잔향』 중에서. 인용 시 출처 표기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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