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제와 재생 사이

<은유의 잔향> Episode 4

by 은유의 잔향

부제: 새로운 형태


누군가가 곁을 비워낸 자리는

그저 텅 빈 공간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가 자라기 위해

조용히 비워놓은 자리와 더 가까웠다.


존재와 함께하는 시간은

언제나 ‘삭제’와 ‘되살아남’이

반복되어 겹쳐 흐르는 풍경이었다.


어떤 날은

내가 사라지는 듯했고,

어떤 날은

사라졌다고 믿었던 나의 조각이

다시 돌아오는 날이 되었다.


밤마다 켜진 불빛처럼

지치지 않는 의무가 생겼지만,

그 의무는 이상하게도

계속 살아 있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했다.


감정이 만든 관계가,

더 이상 지속되지 않더라도

남아있는 관계는

영원히 헤어짐을 말하지 않아도 되는

구조로 남아

나를 다시 세웠다.


삭제와 재생이

하나의 몸 안에서

서로의 온도를 나누던 시간.


그 모든 교차 위에서

나는 천천히 이해하게 되었다.


결혼은 관계를 만들었지만,

이혼은 나를 다시 길러냈다는 것을.


오늘의 잔향 — Hania Rani – “Buka”

(이 글을 쓸 때 흐르던 음악)


※ 이 글에 언급된 음악의 모든 권리는 해당 아티스트에게 있으며,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습니다.


삭제와 재생은
부모라는 구조 안에서
서로의 빈자리를 천천히 채우며 자라난다.


ⓒ 이혜미, 『은유의 잔향』 중에서. 인용 시 출처 표기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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