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말
〈은유의 잔향〉[Ep.4] ‘결혼과 이혼’
이 장을 쓰며 나는
결혼과 이혼을 감정의 실패로 기록하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의 잘못이나 관계의 붕괴로 정리하는 대신,
하나의 삶이 어떤 선택의 구조 안에서
어떻게 확장되었다가,
어디에서 더는 유지될 수 없었고,
그 이후 어떻게 다시 정렬되었는지를
천천히 바라보고자 했다.
사람은 인생에서 중장기적인 결정을 앞두고
대개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 선택이 지금의 나에게
감당 가능한 책임인지,
지나갈 수 있는 거리인지.
차를 고를 때, 집을 마련할 때,
몇 해의 시간을 들여 무엇을 공부할지를 정할 때처럼.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을 선택하고
하나의 가정을 이루는 일 앞에서는
나는 같은 질문을
충분히 오래 붙들고 있지 못했다는 사실을
이후에야 깨닫게 되었다.
그 시기의 나는
어떤 상태였는지,
무엇을 감당할 수 있었는지,
얼마만큼을 함께 걸어갈 준비가 되어 있었는지.
상대에게 무엇을 기대하기 이전에
나 자신을 먼저 점검했어야 했다는 사실이
이 장을 정리하며
조용히 드러났다.
Ep.4는
결혼이 나에게 무엇을 주었는지,
이혼이 무엇을 앗아갔는지를
계산하는 장이 아니다.
결혼이라는 구조가
두 사람의 감정을 넘어
삶의 리듬과 방향을 어떻게 바꾸는지,
그리고 더는 유지할 수 없는 구조를
해체하는 선택이
어떻게 또 다른 정렬이 될 수 있는지를
기록한 장에 가깝다.
이 과정에서 나는
완성된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보다,
적어도 내가 서 있는 자리의 깊이와
내가 건널 수 있는 거리를
스스로 알고 있는 상태로
관계에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완전해졌기 때문에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함의 무게를 알고
그 무게를 들고도
함께 걸을 수 있는지를
묻는 일이 먼저였다는 것을.
그래서 이 장의 끝은
어떤 결론으로 닫히지 않는다.
무엇을 얻었는지,
무엇이 옳았는지를
선언하지도 않는다.
다만,
하나의 구조가 해체된 자리에서
이전과는 다른 기준으로
삶이 작동하기 시작한
그 지점을 남겨두고자 했다.
결혼은 하나의 형태를 만들었고,
이혼은 그 형태를 풀어냈지만,
그 사이를 통과하며
내 안에 남은 것은
사람을 재단하는 기준이 아니라
선택 앞에서
스스로에게 던지게 된 질문들이었다.
『은유의 잔향』 Ep.4는
사랑의 끝을 기록한 장이 아니라,
선택을 바라보는 각도가
조금 달라지기 시작한 순간의 기록이다.
향은 언제나
형태가 사라진 뒤에 남는다.
눈에 보이던 구조가 무너지고 난 자리에서,
이후의 걸음을
조심스럽게 바꾸어 놓는 것.
이 장이 남긴 잔향 역시
그와 같은 방식으로
아주 천천히,
다음 삶의 방향에 스며들고 있다.
한 줄로 정리하면,
형태는 사라졌지만
그 형태를 지나온 감각은
이후의 선택에 오래 남는다.
[덧붙임]
언젠가 그런 문구를 읽은 적이 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사람이 어떤 비밀을 품고 살아가는지,
어떤 거짓말을 선택하게 되는지,
그리고 서로에게 얼마나 오래 충실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일이
결코 당연하지 않다는 이야기였다.
남녀의 사랑은
최초의 열정이 사라진 이후에도
더는 사랑스럽지 않고,
짜증이 나고,
아프고 힘든 순간이 이어질 때조차
서로를 돌보고
서로에게 충직하겠다는 태도를
지켜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글이 아니라
삶을 통해 배우게 되었다.
젊은 시절의 기억,
함께 겪은 시간들,
싸움과 화해의 반복 속에서 쌓인 정은
결혼이라는 두 사람만의 역사가 된다.
그 긴 여정을 함께 걷고, 역사를 만들어가는 많은 관계가
혹여 지금의 상황이
완전히 안정되지 않았더라도,
틈틈이 얼굴을 마주하며
서로를 놓지 않기를.
이미 함께 만들어온 하나의 세계를
너무 쉽게 허물지 않기를.
그리고
이토록 많은 선택과 책임 위에서만 가능한
사랑이라는 경험이
각자의 삶 속에서
오래 지속되기를.
해보지 못한 사람이기에, 응원하고 바라며
이 글을 마무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