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OBER.11.2023
주기적으로 전시장에 가는 것은 내 오랜 취미생활이자 직업병 그리고 습관이다. 월말이나 월초에는 서울, 경기지역에 진행하는 전시는 뭐가 있는지 사이트를 통해 둘러보는 편이고, 평소에는 sns에 미술관이나 갤러리 전시 소식을 전하는 계정들을 팔로우해놓고, 알림이 뜨면 들어가서 대강 살펴보고 괜찮은 전시는 캡처해 두거나 다이어리에 일정을 기록해 둔다.
대학 때는 주말마다 숙제처럼 안국동에 들러서 거르지 않고 볼 수 있는 전시를 하루 종일 보고 오기도 했다. 현장에 있는 모든 작가가 나를 가르치는 선생님, 선배라고 여겼기에 다 배울 것 투성이었고 뭐가 참이고 거짓인지 구별 없이 닥치는 대로 정보를 수집했었다. 학부를 졸업하고 작가가 아니라 스텝, 기획자로서 미술관에 속해 일하기 시작하면서는 더 강박적으로 전시를 보기 시작했다. 시대의 흐름을 읽어야 했고 아직 눈에 띄지 않은 원석의 작가를 수집해야 했기에 전시장에 하루라도 들리지 않으면 불안했다. 그리고 그때쯤부터 점점 작품을 작품으로 보고 대하기가 어려워졌다. 순수한 감탄과 감동은 차단하고 번뜩이는 전시구성, 작품의 완성도와 신박함, 동 시대성, 스타성 등을 이리저리 재고 따지며 전시를 평가하는 이상한 버릇만 늘어갔고 일반 관객과는 아주 아주 멀어졌다. 그렇게 관객은 고려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수 큐레이터와 한국미술계에서는 꽤 영향력 있는 수석 큐레이터 몇몇과 함께 사적으로 저녁 식사 자리를 갖게 되었다. 나는 그곳에서 말단 중에서도 말단이었다. 때문에 할 말이 있어도 없는 상태로 영어와 한국어가 7대 3 정도 되는 대화를 들으며 술만 마시고 있는데, 그들은 그 해에 여러 비엔날레를 석권한 뜨거운 감자였던 한 설치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다. 가만 이야기를 들으며 불쑥불쑥 올라오는 의문들을 잘 숨기고 있었는데, 술이 몇 잔 들어가니 이상한 용기가 발동되어 참았던 질문을 결국 하고 말았다.
“그런데요, oo선생님 ooo작가의 작품은 왜 그렇게까지 각광받는 것일까요? 어떰 점에서 이렇게까지 호평을 받을까요? 동 시대성이 현대미술에서 중요하다면 도대체 그 작가는 무엇을 시대성으로 삼은 것일까요? ”
잠깐의 정적과 황당하면서도 당황스러운 눈빛이 나를 두고 그들 사이에 오고 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중 가장 권위 있는 큐레이터 한 명이 입을 열었다.
“아, 글쎄요. 굉장히 프레자일 하잖아요? 난 그게 좋더라.”
다들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이고 이야기는 다른 주제로 넘어갔다. 그런 질문은 가치 없다는 듯이 왜 그런 질문을 하냐는 듯이. 하지만 진심으로 궁금했다. 설득당하고 싶어서 물어본 질문이었다. 3년쯤 이곳에서 몸 담으며 점점 엘리트주의에 젖어가는 것 같았고, 어느새 우리들만의 리그 그 울타리 안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당시에 그렇게 취해있지도 않았는데도 정신이 확. 들었다. 그리고 그 대답은 내내 나를 쫓아다녔고, 그다음 해 비로소 그들의 성에서 나왔다. 물론 그 프레자일함이 동 시대성이라고는 생각했고 어느 정도 수긍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나는 나올 수밖에 없었다. 참으로 중요한 일들을 하시는 분들이지만 나의 중요함은 그곳에 없었다.
그 이후로 근 십 년은 헤매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여전히 전시장은 간다. 그리고 작년 정도부터는 평가하며 그림을 보는 버릇에서도 벗어나고 있다. 가능한 혼자보다는 사람들과 전시를 보려 하고 그들과 그 이후 감상을 함께 느끼고 나눈다.
얼마 전에는 미술선생님들과 함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렸던 내셔널 갤러리 명화전을 보고 왔다. 사람들 사이에서 거의 밀려가며 작품을 감상하다 보니 들으려 하지 않아도 옆 사람이 하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는데, 듣고 나서 사실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와아- 진짜 잘 그린다. 아 근데 요즘 화가들은 그림을 이렇게 왜 못 그리지? 옛날 사람들이 더 잘 그리는 것 같아 안 그래? 왜 이렇게 그리질 못하냐.”
물론 나 역시도 그 옆에서 귀족의 드레스를 정말 실제 융 원단을 붙여 놓은 것 같이 느껴지게 그린, 심지어 금사까지도 보이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작품의 기량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감상하고 있었지만, 관객의 말에는 힘이 쫘악. 하고 빠졌다.
아... 역시 관객이 고려되지 않은 수많은 기획전시들 속에서 현대미술은 그저 그들만의 리그 속에 있겠구나. 변기가 샘이 되고 모더니즘에서 포스트 모더니즘으로 변화하는 서사 속에 동 시대성이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모두가 미술의 서사. 역사에 대해 공부할 필요는 없지만 그럴 수도 없고, 하지만 이렇게는 아니지 않은가. 우리는 작품을 통해 무엇을 느끼고 느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리고 그 시대에 전문성과 놀라운 기량, 집약된 노동력이 지금 시대에서는 무엇으로 발현되어 감동을 주고 제대로 된 질문을 던질 수 있는지에 대해 많은 작가와 기획자들이 더 많이 고민해야 한다는 생각도 한다.
예술의 역할은 정해져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가란 무엇인가 하고 물을 때, 예술가는 시대에 잊어서는 안 될, 잊혀서는 안 될 중요한 질문 하나를 던지는 사람이라는 것에 대해서 이견은 없다. 이 대답 앞에서 나 역시 자유롭지 못하고 고개들 수 조차 없지만, 그래도 이를 의식하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스스로가 무엇에도 휩쓸리지 않고 유의미한 질문을 하고 대답을 찾아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