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OBER.18.2023
글을 쓰자. 그림을 그리자. 그림을 그리지 않고 글을 쓰지 않으면 작가가 아니다. 그렇다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기만 하면 작가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지만 이도 저도 아닌 나는 그저 쓰고 그리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것은 창작활동이기 이전에 나를 만나기 가장 좋은 장소가 되기도 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직면’이 되겠다.
갈등상황이나 어떤 문제를 만나면 문제를 문제라고 인식하기도 전에 회피해 버리곤 하는데, 단순한 ‘회피’라고만 생각했던 이 습이 근래에는 선택 앞에서 차선만 선택하는 문제해결 방식인 것 같은 쎄-함을 느꼈다.
사실 어린 시절부터 드러난 모습이었는데, 친구 여럿이 모여 있거나 언니랑 있을 때 부모님이나 다른 어른들이 나눠 먹으라고 아이스크림을 종류 별로 사 오시면 나는 항상 가장 마지막에 남겨진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난 다 괜찮으니까 먹고 싶은 거 먼저 골라’라는 단골 멘트로 그게 정말 편해서 그렇게 권했다. 선호하는 아이스크림이 분명 있긴 하지만 그걸 안 먹는다고 화가 나거나 힘들지 않다. 남은 아이스크림도 좋다. 평화롭게 끝나는 것 이 가장 좋다. 희생?이라는 거창한 표현을 하긴 그렇지만 거의 모든 부분에서 남겨진 것을 취하는 편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다면 그걸로 끝. 나는 어떤 상황도 불편하지 않다. 갈등이 생기는 상황에 더 불편함을 느낄 뿐. 그래서 모든 부분에서 이런 모습을 취하며 살아왔는데, 방황이 길어지고 계속해서 나를 들여다보는 와중에 이 부분이 생각보다 심각하게 모든 부분에 적용되고 있었음을, 즉 스스로 내면에서도 이런 식의 자세를 취하고 있었음을 직면하게 되었다.
놀랍게도. 나는 나만을 위한 선택의 순간 앞에서도 내가 제일 먼저가 되지 않는다. 그간의 경험치, 들어가는 물질적 자본, 시간, 주변인과의 관계, 사회환경 등. 물론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긴 하지만 늘 나의 욕구보다 이러한 주변 상황이 가장 먼저 선택의 기준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최초에 선택에 놓여진 상황을 잊고 자연스럽게 차선을 선택하게 된다.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자각도 하지 못한 채 대안을 선택하는 것이다. 대학을 선택할 때도 신체, 경제적 여건과 시간 등을 생각하며 차선을 선택했고 작업의 주제를 선택할 때도 직장을 선택하거나 이후에 대학원 진학에서도 계속해서 같은 패턴을 보였다. 갈등 상황을 못 견디다 보니 내면에서의 부딪힘도 싫었나 보다. 그런데 차선은 차선이다. 대안은 대안일 뿐 그것이 본질적인 문제해결이 되지는 않는다. 결국은 드러난다. 모든 것이 나의 욕구가 배제된 선택으로만 만들어진 성은 결국 무너지게 된다. 이제부터는 나를 속이지 않고 진짜가 무엇인지를 가려내야 하는 진검승부가 남았다. 더 이상의 핑계는 없다. 진짜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입고 있는 옷과 먹고 있는 음식 그리고 내가 있는 공간, 손에 연필을 잡던 순간부터 숨처럼 그려왔던 그림과 아이들을 가르치고자 하는 마음도 모두. 진짜를 가려보자. 어떤 차선의 선택 뒤에 숨어서 대안의 삶을 살고 있는지, 올해 남은 두 달은 나의 잃어버린 꿈과 진실한 욕구를 찾아내는 것에 총력을 다할 것 같다. 부디 찐. 을 찾아내서 내년에는 차선이 아닌 최선을 선택한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최선의 삶을 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