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OBER.4.2023
긴 연휴가 끝났다.
집에서 본가는 차로 이삼십 분이면 갈 수 있다. 같이 식사를 하거나, 잠시 들려 안부를 전할 수 있을 만한 지척의 거리지만, 알다시피 가족 간의 거리는 천리, 만리다. 그래서 연말연시, 생신, 명절과 같은 특별한 날은 차일피일 미루는 가족 사이에서 좋은 핑곗거리가 된다.
우리 집은 제사를 지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추석에는 송편을 맞추고 전을 부치며, 잡채를 만든다. 그저 명절 분위기를 내려는 건데 하다 보면 동네잔치 할 수준이 된다. 언니와 나는 낄낄거리며 전을 부치다 태우기도 하고 매번 까먹는 잡채 만드는 법을 엄마에게 연신 묻는다. 아빠는 새벽부터 산에서 주워 온 밤을 한쪽에서 찌고 숟가락으로 야무지게 파내어 밥그릇에 고봉으로 담아 두신다. 그리고는 숟가락에 찐 밤을 가득 퍼올려 전을 부치는 나와 언니 쪽으로 가져오신다. 나는 별로 내키지 않지만 어미새의 먹이를 받아먹는 새끼처럼 입을 쩌억 벌린다. 아빠의 입가에 흐뭇함이 새어 나온다. 내, 돈도 많이 못 벌고 변변한 직장 하나 자랑거리 하나 없는 딸내미지만 이게 효도지 별거냐.라고 생각한다. 맛있게 음식을 먹고, 달에게 소원을 빌러 집 앞 놀이터에 나갔다. 언니는 정말 열심 기도를 드리고, 부모님은 달구경 보다 어린아이들 마냥 그네를 타신다. 가슴이 울렁한다. 언젠가부터 이런 모습이 자꾸 사진처럼 머릿속에 남는다. 계속되지 않는, 사라질 것. 이제 부모님은 밤새 기침을 하시고 관절이 아프시다며 전처럼 많이 걷지도 못하시고, 금방 피곤해하신다. 식탁 위 한편에는 온갖 드셔야 할 약들이 한 상자이고 병원에 가시는 일도 잦다. 예전에 부모님이 바라보시던 할머니, 할아버지의 모습이 똑같이 재현되는 것을 본다. 나 나이 먹은 것은 생각을 못하고 부모님 앞에 흘러가는 세월이 야속하기만 하다.
이미 나는 서른을 훌쩍 넘겨 몇 년 후면 불혹을 보는 나이인데도, 아직도 엄마 아빤 나를 정말 열 살 난 아이 대하듯 말씀하신다. ‘왜 애한테 그래~’ ,‘아직 어리니까 그렇지’, ‘더 자- 누워있어’, ‘너무 귀엽다.’, ‘아이고 이뻐라~’ 하는 이 말들이 듣기 좋다. 어디서 내가 '애' 이겠는가. 개 아니면 다행이지.(강아지로서의 개의 표현이 아니고 수식으로 붙는 개입니다.)
그러면서도 부담스럽다. 자식의 역할과 도리, 가족으로서의 본분이라는 것이 어떤 모양이고 어디까지일까?
언니와 잠자리에 누워 어린 시절 이야기를 꺼낸다. 불과 오 년 전까지만 해도 기력이 남아계시던 부모님은 하루가 멀다 하고 서로를 바닥으로 밀치고 그보다 더 한 말로 심하게 다투셨다. 그리고 우리가 정말 어렸고 부모님은 더 젊으셨던 그 시절에는 말도 못 하게 치열하게 싸우셨고 그때마다 우리는 방 문고리를 꼭 잡고 불안과 두려움에 덜덜 떨며 엉엉 울었다. 그 영원의 싸움 소리가 멀리멀리 잦아들 때까지...... 화분이 깨지고 반찬통이 벽면을 다 덮은 크리스마스 아침. 엄마와 다홍빛으로 얼룩진 천장과 벽을 닦던 기억, 그리고도 그 밤에는 케이크에 초를 꽂고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는 정말 이상한 가족에게서 너무 어렸던 나는 늘 불안정함을 느꼈다. 언니 앞으로 칼이 날아와 장식장 유리창이 깨지고, 서로의 목에 손자국이 남았던, 그때부터 집안의 모든 칼과 병을 고사리 같은 손으로 숨겨 두었던 피하고 싶은 기억들. 언니와 나는 이제는 농담을 섞어가며 쓴웃음을 지으며 이야기하지만 이미 삶에는 여러 형태로 불안과 불안정함이 자리 잡았다.
단란해 보이는 우리 가족은 이 오랜 시간 벌어졌던 모든 일이 없었다는 듯 회피한다. 언니도 엄마도 아빠도 마음에 맺혀있는 서로에게 낸 여러 모양의 상처들을 그냥 덮어둔 채로 지금은 웃는다.
나는 직면하지 않는 지금이, 회피하는 현실이 나쁘지 않다. 가능하면 죽을 때까지 모르는 척하고 싶다. 꼭. 모든 것을 직면해서 해결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아니 사실 잘 모르겠다. 다 꺼내어 서로에게 사과하고 지난날을 반성하면 나아질까. 아직은 진행 중인 어렵고도 가깝지만 먼, 같이 늙어가는 가족과의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