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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27.2023

by 한우주

줄줄이 써 내려간 글을 뒤로 보내고 무심코 꺼내든 시집 속 시 하나가 나를 불러 세운다.

이 정신없는 와중에도, 풍성한 한가위가 시작한대도 마음에는 어김없이 가을이 오는가 보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질투는 나의 힘> - 기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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