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MBER.13.2024
차분한 어조와 빛을 잃은 눈으로 내년에 자신이 없어도 놀라지 말라는 친구의 말을 들었다.
나는 처음, 내가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를 떠올렸다.
‘글’ 이라기보다는 일기였고, 일기라고 보기에는 무차별적인 ‘쏟아냄’이었다.
누구에게 설명할 수도, 말할 힘도 없는 불안과 두려움이 터져나갈 듯 쌓여가고 있었고, 어디에라도 쏟아내지 않으면 눈덩이처럼 불어나 정말로 터져 죽어버릴 것 같았다.
너무 불안해서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던 나는 하루 종일 바닥에 비스듬히 앉아 팔이나 허벅지를 세게 긁거나 살을 뜯어냈다. 그럼에도 도저히 사라지지 않는 불안에 무작정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쓰인 글자는 울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했다. 어떤 난장을 피워도 글쓰기는 나를 평가하지 않았으며, 조건 없이 나를 받아주었다. 그저 종이와 연필만 있으면 어디에서든지 평등하게 글을 쓸 수 있었고 늘 변함이 없었다.
그때의 나는 ‘그저 무엇이 아니어도 그렇게 존재함’에 대한 진실을 견뎌내지 못하고 글로 도망갔고, 정말 미친 듯이 글을 썼다. 매일 같이 다음날 눈뜨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잠들었음에도, 사실은 너무나도 잘 살아내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쓴 글들을 나와 같이 괴로워하는 누군가가 있지 않을까, 있다면 그나마 조금의 외로움이라도 덜어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엮어서 세상 밖으로 내보냈다. 그리고 나도 세상으로 나왔다.
담담하고 건조한 어조
텅 비어버린 눈
불의의 사고나 타자에 의해서가 아닌, 내가 나 스스로를 죽음으로 내몰기까지는 오로지 나의 선택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그러니 다시 물었으면 좋겠다. 스스로에게만 묻지 말고 주변에 모든 것 들 에게. 오지랖 부리는 친구에게, 담장을 비집고 나온 풀에게, 놀이터 맞은편 웅크린 고양이에게, 호수 위를 날아가는 새에게 다시 물었으면 좋겠다.
나의 글은 지금도 불쑥불쑥 살고 싶지 않은 나를 살리고 싶은, 그리고 나와 같은 다른 누군가를 살리고 싶은 간절함이다. 그리고 이 간절함이 그의 어깨에 닿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