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UST.10,2022
정말 좋아하긴 한 걸까? 정말 하고 싶긴 한 걸까? 나의 생각과 감정을 믿을 수 없다.
지독한 변덕스러움에 질린다.
방금 전까지 오 저거 한번 그려볼까? 싶었던 것이 전혀 그리고 싶지 않고 심지어 귀찮다.
귀찮음- 정말 무서운 병. 분명 여러 가지의 느낌과 감정들이 있었을 텐데 ‘귀찮음’은 이들을 한데 묶어 섬세함을 잃게 하고 무감각하게 만든다. 이 다른 변명의 여지를 줄 수 없는 귀찮음이 머리, 어깨, 팔목, 발목을 잡고 늘어진다.
연필이 이렇게 무거웠나. 붓은 또 왜 이렇게 말을 안 듣지, 휴대폰만 들었다 놨다 껐다 켰다 해본다. 삶에 연차가 쌓여감에 따라 좋았다가 싫어지는 일에 마냥 포기할 수가 없다. 괜한 미련 인 걸까?
그림 그리는 나 는 그럭저럭 인정하면서 수식어가 없는 ‘나’는 인정이 안 되고 용납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림을 그리지 않으니- 나는 나를 계속 부정하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존재하는데 계속해서 부정함에 귀찮아진 것일까?
아니면 귀찮아서 더 부정하게 되는 것일까?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 인지하는 문제는 차치하고 연필과 붓 대신 노트북을 켠다.
여지없이. 여과 없이 연인과의 문제를 친구에게 하소연하듯 글자를 써내려 간다.
내뱉듯 써내려 가는 글처럼 그림을 그리는 것은 왜 용납이 안 될까, 그러는 와중에 나는 나의 사랑을 의심하고 결국엔 아무것도 그려내지 못한다.
좋아서 하는 것, 그 감정이 어땠었는지 무엇이었는지 잊는 것 같다.
분명 그랬던 것 같은데, 그게 뭐였더라- 하고 까마득하다.
이런저런 부정의 씨앗이 마음에 심어지고 심기가 무섭게 싹이 튼다. 더 이상 물을 주어선 안 된다. 꺾지도 뽑지도 말고 잘 파내서 땅을 다시 고르고 좀 더 좋은 녀석을 심을 준비를 해야 한다. 그랬는데도 또 같은 녀석이 심기거든, 그냥 다시 파내면 된다. 어려울 것 없어. 뭐 남들이 삽질이라고 해도 말이야 이게 인생이지- (이게 연차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