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mber.19.2025
무엇을 처음 좋아하기 시작했을 때 명징한 이유가 있었을까?
그림 그리기가 좋아진 이유를 더듬더듬 생각해 보니,
그저 그리는 것이 좋아서였다.
그냥 무엇이 무엇이어서 좋았던 것이다.
그러다 좋아함이 깊어지고,
누군가 왜 그리는 것이 좋으냐고 물으면 이래서 좋고, 저래서 좋고 이유가 늘어갔고,
더 시간이 지나고는
도대체 왜 좋아하는지 모르겠는 상태가 되었다.
엄마가 전부터 두꺼비 집을 가릴만한 그림을 하나 그려달라고 몇 번을 말씀하셨는데, 차일피일 미루다, 지난 민생지원금으로 산 캔버스에 달항아리를 그렸다.
달항아리는 다복의 상징이라고 하고, 근래에 다이소 갈 때마다 달항아리를 들었다 놨다 하시길래, 그려드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좀 지루하다고 생각하며 그리기 시작했다.
떠오르는 색감이나 이미지로 스케치를 하다 보니,
달항아리의 오묘한 형태와 흰색이 가진 다양한 색이 점점 그리는 것에 재미를 더했다.
어느새 부탁받아서 그리는 그림이라는 사실은 잊고 놀이하듯 웃으며 그리는 나를 발견했다.
작년에 장난 반 재미 반으로 서랍장에 그린 꽃그림 다음으로 자유롭다고 느낀 그림은 처음이다. 머리를 비우고 아름다움 그 자체를 감상하며 그리는 것은 정말 즐거웠다.
그러다.
그림을 마냥 좋아했는데,
좋아하는 것이 힘들어진 이유에 대해 생각했다.
그건. “잘하고 싶다.” 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을 때부터 인 것 같다.
보는 눈이 생기고,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서는 더 좋은 작업이 하고 싶었고,
어느새 좋아하는 마음은 잃고 그냥 “잘하고 싶다” 는 생각만 남았다.
그러고 나니, 정말 버거워졌다.
흰 종이 앞에, 흰 캔버스 앞에 서는 것이 점점 두려워지고,
계속해서 나는 나를 더 잘 그리게 하기 위해 비판하고 비난했다.
웃음은 잃은 지 오래였고, 몰릴 때로 몰려 늘 절벽에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그냥 부탁받은 그림을 그리는데 이렇게 홀가분하게 그릴 수 있다니.
자연물에 가까운 달항아리를 보면서 모든 아름다움, 자연스러움, 조화와 균형, 이 모든 ‘선함’이 나를 살리는구나 싶다.
잘. 하고 싶은,
잘. 살고 싶은 내 마음이. 나를 조르지 않도록. 가까이에 선함을 두는 그리하여 매일의 기적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그리는 달항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