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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8.2023

by 한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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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초반에 나의 어머니는 첫 아이를 출산했다.

여자아이였고 눈에 별을 박아놓은 듯 반짝거리는 소중한 아이였다.

딸의 딸을 만난 엄마의 엄마는 감격의 눈물을 쏟았고, 아빠의 엄마는 딸이라는 소식을 듣자마자 그 길로 다시 버스 타고 돌아가고 싶었다고. 아직 병원 침상에 누워있는 며느리를 따끔하게 혼내셨다.

80년대 후반에 들어서 나의 어머니는 두 번째 아이이자 엄마의 인생 마지막 아이를 출산했다. 의사는 자다가 일어나서 받기 싫다는 이유로 산모의 출산을 일찍 유도했고 억지로 빼낸 아이는 퉁퉁 불고 길쭉하게 늘어져 나왔다. 두 번째 여자아이.

두 번째 여자아이는 자라면서 줄곧 어른들에게,

“아이고 이뻐라, 안 낳았음 어쩔뻔했어~ 이 녀석이 남자면 얼마나 좋아”

“아고, 욘석이 달려 나왔어야 하는데~”

“딸딸이야?”

“딸딸이 아빠?”

“그 집은 아들이 없어서...”

이런 수많은 어른의 말들 덕분에, 나는 성을 인지할 수 있을 때부터 나의 성을 부정하곤 했다.

‘그러게, 내가 아들이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남자면 좋겠다.’

자연스럽게 남자들을 부러워했고 남성을 여성보다 우위에 두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 사춘기를 지나면서는 어른의 말이 잘못된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이런 취급을 이 세상 딸들이 받고만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2000년대로 들어서 스스로 어른이라고 생각이 들면서부터는 가는 술자리마다 남자 선배들과 싸움이 났다. 시작은 단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을 뿐인데,,, 이상하게 늘 싸움으로 번졌다. 비교적 어린 나이에 창업해서는 더 냉혹하고도 수치스러운 차별의 세계를 맛봐야 했고, 직장에 들어간다고 한들 유리천장은 금방 느낄 수 있었다.

다행히도 그러는 긴 시간 동안 상처받은 만큼 다른 시선을 얻을 수 있었고, 지금은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딸로 태어나서 정말 다행이다. 태어나자마자 딸로서 사회적 약자로 치부되어서, 그 모든 비주류의 시작에 있을 수 있게 되어서, 수많은 약자라 불리는 사람들과 종과 생명체까지도 당연하게 함께하고 이해할 수 있는 시선을 갖게 된 것 아닌가.

그러니 내가 여성인 것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어쩌면 역설일 수도 기만일 수도 있으나. 내가 여성이어서 받은 모든 부침이 타자를 더 넓고 깊게 이해할 수 있는 힘으로 발현되었으니 한편으로 고마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여성과 남성을 떠나 많은 사람은 아직도 그리고 다시, 역차별과 프로불편러라 부르며 이러한 사실들을 폄훼한다. 그리고 힘들게 함께 시선을 바꾸고자 해온 노력을 너무 쉽게 무시한다.

여성의 근로여건 개선, 즉 생존권과 참정권 보장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19세기부터 외치던, 그리고 현재까지도 외쳐야만 하는 여성의 권리는 무엇을 의미할까.

‘여성’이 대변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남성과 여성으로 서로를 가르려는 것이 아닌 모두 함께 살고자 하는 것임을, 페미니즘은 결국 휴머니즘의 시작인 것임을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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