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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RIL.12.2023

by 한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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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 할 일에 대한 압박이 커질수록 집안이 깨끗해진다.

남김없이 빨래를 다 널고, 청소기를 돌린다. 화장실 거울도 닦고 거실의 서랍 속 약상자까지 모두 정리한다. 하다 하다가 정 할 것이 없어지면 그제서야 해야 할 일 앞에 앉는다. 억지로 하다가 도저히 집중이 되지 않으면 과자를 하나 꺼내 먹는다. 과자를 먹으니 커피도 내려야겠다. 이제 좀 해볼까 하는데 고양이가 운다. 밥을 줬는데, 무릎 냥이 하고 싶단다.

다시 할 일 앞에 앉아본다. 머릿속이 뒤죽박죽인데 이상하게 백지다.

너무 많으니 아무것도 없다. 우선순위를 아무리 정해도 돌아가는 세탁기처럼 계속해서 뒤섞인다. 그러면, 그냥 이런 시기이려니 한다. 어떤 시기의 나는 나름대로 똑 부러지게 일을 처리했고 뭘 해야 할지 명확히 알았다면, 흐리멍덩해지고 이것저것 자꾸만 뒤 섞이는- 이런 시기도 있는 것이겠지. 한다. 그러면 오늘처럼 이런 글도 이런 그림도 그리게 되는 것이니 또 나름의 의미가 있다. 고 생각하자.


‘이게 맞아?’ 하고 동굴에서 소리가 들려오면 ‘글쎄’하고 대답한다.

맞다고 확신하고 간 길에서도, 맞는지 어쩐지 모르고 간 길에서도, 이건 아닌데 싶던 길에서도. 얻고 또 잃었다. 그런데 무슨- 하는 마음

깨끗해진 집을 멍하니 본다. 빨래가 잔뜩 널려있고 신발은 가지런하다.

언젠가 나도 이렇게 분명히 치울 것을 알고 세탁할 것과 버릴 것을 알게 될까.

그러면 그쯤엔-

집이 더러워져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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