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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23.2023

by 한우주


조금만 걸어 나가면 바다를 산책할 수 있고 나무와 꽃, 새소리로 가득한 마을에 크지 않은 집. 그리다 만 캔버스와 물감이 널브러진 방에선 창밖으로 작은 마당이 펼쳐지고 집안에 꽂아둘 꽃들을 수확하는 할머니가 된 모습을 종종 상상한다.

또래보다 이르게 분에 넘치는 경험을 하고 한참 일 해야 하는 삼십 대에 들어서 번 아웃과 공황장애, 우울과 수면장애를 한 번에 얻은 나는, 건방지게도 이 젊고 창창한 나이에 은퇴한 삶을 꿈꾼다. 그리고 이것이 가끔 희망이 되기도 한다.

텅 빈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이상하게 고달파서 밤마다 눈 뜨면 거품처럼 날아가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내게, 이런 먼 미래를 그려볼 수 있음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이렇게 먼 미래를 생각하며 그래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제는 자의와 상관없이 푸른 바다라든지 쏟아지는 부드러운 햇빛, 때로 내리는 비를 나가서 맞는다든지 하는 것들이 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처음으로 꿈꿔본 미래를 만날 수 있을까.


지난주에는, 그들이 만나 협상하는 테이블을 갖고 나면 더 이상 전과 같은 바다는 만날 수 없을 것 같아, 무리해서 당일치기로 동해를 다녀왔다. 고속도로를 달리며 보이는 양쪽 풍경에는 초등학교 시절처럼 다시 무차별한 벌목에 몸살 하는 산들이 있었고, 한국의 나폴리라 불리는 삼척에는 굴뚝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화력 발전소를 짓고 있단다. 삼척에 사는 시민들은 반으로 갈라져 매일 같이 시위했지만 결국은 지어지고 있다.

도착한 바다는 여전히 강인하고 부드럽고 아름답다.

아무리 발전소를 짓기 위해 모래사장의 흙을 퍼 나르고 그 위로 돈을 내야만 앉을 수 있는 땅이 된 파라솔이 세워져도 멈출 줄 모르고 시시각각 모양을 바꾸는 바다는 정말 눈이 부셨다.

망설임 없이 바다로 달려들었다.

차가웠고 세차게 치는 파도는 아팠다. 가끔은 배를 가격하기도 했고 뺨까지 올라와 찰싹 때리고 가기도 했다. 화가 난 듯 밀치고 바닷물 속으로 머리까지 푹 담그기도 했다가 부드럽게 넘실거리며 따듯하게 안아주기도 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따뜻한 품이었다.

나는 그저 서서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일 뿐이었다. 아프기도 하고 황홀하기도 한 바다의 모든 몸짓을 몸과 눈에 넣으면서 한참을 서 있었다. 이상하게 바다를 보면 엄청나게 울 것 같았는데, 눈물은 나지 않았다. 그 모든 것을 넘는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이 나의 감정을 집어삼켰다. 벽처럼 일어나 걸어오는, 동물이 떼 지어 달려오는 모습 같기도 한 파도는 그렇게 한참을 이야기하듯 몰아쳤다. 집으로 돌아오니 허벅지에 벌겋게 파도가 할퀴고 간 자국이 선명하다.

그리고 그들은 결국 내일부터 바다에 흘려보내기로 결정했다.

2011년 사고 이후 일본과 그에 관심을 보이던 해외 작가들이 그와 관련한 작품을 비엔날레와 도큐멘타에 출품할 때, 그들의 작품을 보면서 그저 작품으로만 평가했던 기억이 난다. 안타까워하면서도 그저 다른 나라 이야기인 줄만 알았던 십여 년 전의 그 일이 이제 우리나라와 전 세계를 물들인다. 일본 내에서도 그와 관한 이야기가 여전히 붉다. 그와 관련한 다 보도되지 않은 사건 사고가 해결되지 않은 채 그대로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앞장서 안전하다고 말한다. 나는 너는 우리는 무엇을 보았고, 말하는가. 시간이 지나 역사책에는 무엇이라 기록될 것인가. 처음 가진 꿈을 눈앞에서 잃게 될 수도 있는 나는 지금을 무엇이라 쓰고 그리고 남길 것 인가. 아직도 손 끝에 입가에 바다의 기운이 만연하다. 생명의 온기가 아직은 살아있다. 우리 모두가 사실은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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