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과학 연 (Kite)

행복한 과학 : Happy LAB 004

by 구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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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나를 곁에 앉히고 대나무를 집어 들었다.
투박한 부엌칼로 대나무를 쪼개고 앏게 벗겨 내기를 반복하며

가늘고 얇은 대나무살을 만들었다.

나는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방바닥에 붙인 채,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에서 점점 얇아지는 대나무살을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았다.

한지를 가지런히 오리고,
가운데에 둥근 구멍을 내고,
밥풀을 으깨어 풀처럼 발라 대나무살에 정성스럽게 붙였다.

위아래 모서리를 실로 팽팽히 연결하고,

연은 둥근 곡선을 가진 단단한 모양을 갖추었다.

마지막으로 가이드 줄을 만들고,
적당히 실이 감겨 있는 얼레에 연줄을 매어 나에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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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신나서 연을 받아 들고 집 앞 넓은 공터로 뛰어나갔다.
마침 바람이 불어주고,

연은 서서히 하늘 높이 올라갔다.
얼레에 감겨 있던 실이 모두 풀릴 즈음,
연은 놀랍게도 하늘 높은 곳에서 한 자리에 멈추어
마치 달처럼 안정적으로 가만히 떠 있었다.

내 손을 힘껏 당기는 연줄의 긴장감에 얼레를 놓치지 않으려고
나는 두 손으로 꼬옥 움켜쥐었다.
그리고 저 높이 떠 있는 연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어둠이 내려앉고 달빛 속에 연이 희미하게 비칠 때까지
나는 꼼짝도 하지 않고 연을 지켜보았다.


달빛

고요한 하늘

움직이지 않는 연

아이는 그냥 바라보고 있었지만

순수한 몰입과 경이를 경험하는 시간이었다.


어느 순간, 들어오지 않는 손자를 걱정하셨는지 할아버지가 곁으로 왔다.
나를 기특하면서도 신기하다는 듯,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내 옆을 지켜 주었다.
할아버지와 나는 그렇게 오랫동안,

하늘에 멈춰 선 연을 함께 바라보고 있었다.


연을 과학으로 접근해 본적은 없었다.

재미있고 신나는 놀이였고

잡귀를 쫓고, 액운을 날려 보낸다는 의미를 들은것도 같고

전쟁에서 통신의 목적으로 활용되었다는 글을 읽은것도 같고

프랭클린이 연을 이용해 전기의 존재를 입증했다고 배우기도 했고

연은 놀이이자 의식의 도구였다고

과학 기술 발전의 발판이 되었다고

아이나 어른이나 연이 날고 있으면 바라본다고

나에게 잠시 멈추어 하늘을 바라보게 해주는 선물이었던것처럼

가족과 친구들과의 추억으로 기억된다고

연을 바라보는 시선은 거기에 멈추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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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수기의 해변

텅 비어 있는 공간

가만히 앉아 바다를 바라보는 사람

눈을 감고 바람을 느끼는 사람

파도를 따라 천천히 걷는 사람

사라진 시간을 떠올리게 하는 공간

익숙한 곳이지만 낮섦이 매력으로 다가오는 공간

예술가에게는 풍경,

글을 쓰는 이에게는 영감,

기획자에게는 새로운 무대를 떠올리게 하는 공간


체험의 만족, 몰입과 경이, 함께하는 즐거움, 기억의 이미지로

이 공간을 채워야 했다.

여름이 오기전 해변, 여름이 지나간 해변

그곳에는 바람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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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곳에 연을 띄웠다.
화려하고 요란한 스턴트카이트 공연으로 적막이 깨지고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갑자기 분주해진 마음으로 연을 빌리고,

하늘은 연으로 채워지고,
백사장은 아이들의 경이와 설렘으로 채워지고

추억을 떠올리는 어른들의 시선으로 채워지고
함께하는 행복했던 기억의 이미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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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Kite)은 그렇게 행복한 과학의 한 부분이 되었다.

해변에서의 연을 과학으로 표현하지는 않았다.

연은 익숙한 놀이이고, 추억이고, 전통이니까

그 안에 과학은 익숙함에서 자연스럽게 나온다.

5627_13886_126.jpg 라이트 형제의 실험용 글라이더


조지 케일리가 연을 활용한 글라이더를 연구하여 양력, 항력, 중력, 추력의 개념을 정리하고

라이트 형제가 연을 활용한 글라이더를 연구하여 횡축, 종축, 수직축으로 구성된 3축 조종시스템을 완성한 것처럼



평평한 면을 가지고 있는 물체의 무게중심의 위쪽에 고정줄을 만들어 주면 받음각을 이용해 양력으로 날 수 있는 연(Kite)이 된다.


그리고 충분한 바람만 있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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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과학(IN LAB) 링크 : 연(Kite)

자세한 제작 및 실험 방법은 보이는 과학(IN LAB) 링크를 확인해 주세요!!


바람이 불어준다.

책상위 다 먹은 아이스아메리카노 컵에 빨대가 보인다.

창고에 가서 실뭉치를 가져오고

종이를 접고, 오리고, 붙여 연을 만들고

종이컵으로 얼레를 만들어 실을 감고

연을 얼레에 연결하고

밖으로 나간다.

바람에 연이 떠오르고

실을 풀어주고

연은 더 높이 올라가고

그대로 가만히 연을 바라본다.

하늘과 연을 보며 느끼는 가벼움은 휴식이 된다.




행복한 과학 전체보기 링크 : Happy LAB Vol.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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