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화양연화> 만남
영화는 아무런 배경음악도 내레이션도 없이 자막으로 시작한다.
那是一种难堪的相对。她一直羞低著头,给他一个接近的机会。
他没有勇气接近。 她掉转身,走了。
한국어로 번역된 자막은 이렇다.
"그와의 만남에 그녀는 수줍어 고개 숙였고... 그의 소심함에 떠나가 버렸다." 매우 함축적인 표현이다. 그래서 좀 더 풀어서 번역하면 이렇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상대였다. 그녀는 항상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이며 그가 다가올 기회를 주었지만 그는 다가올 용기가 없었다. 그녀는 돌아섰고, 떠나고 말았다." 3인칭 화법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1962년 홍콩이 배경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이는 중요한 뜻을 내포하고 있다. 즉, 1962년 당시의 홍콩이 어떤 상태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이 영화를 좀 더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선 홍콩에 대해 알아보자.
홍콩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중국 대륙의 언어 보통화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과거에는 이곳의 언어를 '위에위(越語 월어)라고 불렀다. 지금은 보통 광뚱어(廣東話 광동어)라고 통칭되고 있다. 광뚱어는 홍콩과 마카오로 퍼진 위에위의 부속 방언이다.
위에(越 월)는 춘추전국시대 양쯔강 하류에 존재하던 나라였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고사 '오월동주(吳越同舟)에 등장하는 바로 그 나라이다.
월나라는 오나라와의 전쟁에서 월왕 구천의 노력으로 승리하지만 결국은 초나라에 쫓겨 남방으로 밀려나 멸망하고 말았다.
지금의 베트남을 월남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월나라 백성들이 남방으로 쫓겨나 세운 나라라는 뜻이고, 홍콩 역시 남방으로 쫓겨난 월나라 사람들이 살던 곳이었다. 따라서 지금의 광뚱(廣東) 지방을 한때 '남월(南越)이라고 부른 적도 있었다.
이후 홍콩은 송(宋), 명(明), 시대에 무역항이나 해군기지로 활용되었으나 원(元), 청(清) 시대에 접어들면서 북방 민족이 세운 나라답게 이곳 광뚱 지방은 중앙의 무관심 지역으로 밀려나 방치되었다.
홍콩이 다시 역사의 전면에 나서는 계기는 인도에 있던 영국의 동인도회사 상선들이 이곳을 드나들며 무역활동을 했기 때문이다. 홍콩의 중요성을 인식한 해양대국 영국은 1841년 전쟁(아편전쟁)을 일으켜 홍콩을 점령하고 1860년에는 대륙의 주룽반도(九龍半島, 까우룽반도, 구룡반도)까지 영국에 귀속시켰다.
이후 1898년 청나라와 신계지역까지 포함하여 확실하게 경계선을 긋고 99년간 조차하여 영국에 할양되었다.
1949년 중국 본토에 공산국가가 들어서자 홍콩은 수많은 대륙인들의 도피처가 되었다. 홍콩은 삽시간에 북새통이 되었고 넘쳐나는 피난민으로 인해 심각한 주거난을 빚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좁아터진 아파트를 보면 이를 짐작할 수 있다.
이후 홍콩은 중국이 다른 세계와 교류하는 유일한 창구 역할을 하며 승승장구 발전을 거듭하며 경제가 활기에 넘치는데 반해 중국 대륙은 경제난에 허덕였다.
특히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62년은 대륙의 경제가 최악을 치닫던 시점이었다. 결국 파탄난 중국의 경제 상황은 '문화대혁명'이라는 극좌파 운동이 발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홍콩 역시 대륙의 물결을 피하기 어려웠다. 대륙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이 주동이 되어 노사운동이 폭동으로 변질되기도 하고 적색테러도 빈번하게 발생했다. 이로 인해 홍콩 주민들은 공포를 느끼며 어렵게 생존을 이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