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이해하는 중국이야기

2. <화양연화> 성장기

by 발길 가는대로

여주인공 장만옥(극 중에는 첸부인, 혹은 수리 첸, 소려진 蘇麗珍이다)은 조그만 무역회사의 비서이며 주로 타자를 치는 역할이다. 그녀의 머리 스타일은 당시에 유행하던 이른바 올림머리인데, 우리 눈에 익숙한 이 머리 스타일은 최소 6시간 이상 소요되는 공을 들여야 한다.


남자 주인공 양조위(극 중에는 차우, 주모운 周慕雲이다)는 무협소설에 관심을 갖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느닷없이 무협소설이 등장하는 이유는 당시의 홍콩에서 타이완 출신의 작가 와룡생 臥龍生의 무협소설이 홍콩은 물론 전 아시아권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었기 때문이다.


첸부인이 국수를 사러 골목길을 내려가는 장면을 슬로 동작으로 표현된다. 차우와 만나는 엇갈리는 좁은 골목과 복도의 장면은 한 편의 뮤직비디오처럼 아무런 대화 없이 흘러간다.


오직 삽입곡만 흐른다. 일본 첼리스트 Shigeru Umebayashi가 연주한 ‘유메지의 테마(Yumejios Theme)’는 3/4박자 속에 한없이 늘어진 슬로모션과 함께 화면에 깔린다.


1991년 일본의 독립영화 <유메지(夢二)>의 테마곡은 이 영화에서 모두 8번이나 재탕된다. 감독 왕가위가 어지간히 좋아했던 것 같다.

1991년 Yumejios Theme

이 장면을 두고 프랑스의 한 평론가는 이렇게 말했다.

"장만옥이 천천히 걸어가는 장면을 보는 동안 아무도 숨을 쉬지 않는다. 화면에 빠져버린 관객은 약도 없다."


이러한 명 장면을 촬영한 사람은 호주 출신의 크리스토퍼 도일( Christopher Doyle, 杜可風 두가풍) 촬영감독이다. 그는 홍콩과 미국에서 미술공부를 했지만 의외로 그는 외항선 선원이 되어 전 세계를 떠돌아다니다가 홍콩에 정착한 사람이다.


왕가위 감독과 팀월을 형성한 이유 중의 하나는 왕가위 감독의 부친도 외항선원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장이머우 감독의 영화 <영웅>에서도 여지없이 아름다운 영상을 보여주며 그의 천재성을 발휘했다.


2-4크리스토퍼_도일과_왕가위.jpg 크리스토퍼 도일과 왕가위 감독


두 주인공이 스치는 골목 장면은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홍콩에서 촬영한 실외 장면이다. 그 외에 이 영화에 등장하는 실외 장면은 전부 홍콩이 아니라 태국 방콕의 차이나타운이나 캄보디아의 차이나타운에서 촬영했다. 따라서 이 골목은 지금 홍콩에서 그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다. 아래의 사진처럼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5-1_골목.jpg 변해버린 골목의 계단

왕자웨이(王家衛 왕가위)는 1958년생이다. 5살 무렵에 상하이에서 가족과 함께 홍콩으로 건너왔다. 따라서 1962년 홍콩의 모습은 자신이 어린 나이에 보았던 홍콩의 모습이다.


두 주인공이 사는 모습 또한 상하이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의 모습이다. 즉, 이는 1962년 홍콩의 모습은 객관적인 모습이 아니라 감독의 주관적인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2-5왕가위와_부모.jpg 왕자웨이와 그의 부모

당시의 홍콩 이민법은 비록 직장이 있더라도 자식은 한 명만 데리고 갈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그는 형과 누나를 10년간이나 만날 수 없었고 광둥어를 모르던 그는 고독한 성장기를 보내야만 했다.


이러한 사정은 그의 엄마 역시 마찬가지였다. 홍콩말을 몰랐기 때문에 그녀는 어린 왕자웨이를 데리고 매일 같이 영화를 보러 갔으며 이는 그녀의 아들이 훗날 영화감독이 되는데 자신도 모르게 일조한 셈이다. 그의 부친은 영어를 잘해 말레이시아의 호텔에 취업하고 있었다.


이러한 그의 성장기로 인해 왕자웨이는 자신의 가족이 떠나온 상하이는 물론 중국의 공산당 정부에 대해서도 매우 비판적이었다. 결국 미운털이 박힌 그는 이 영화를 촬영하기 위해 외국으로 돌아다닐 수밖에 없었다. 중국 대륙에서 촬영허가를 받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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